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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 분

-생애와 가르침-

 

 

THE BUDDHA
A SHORT STUDY OF HIS LIFE AND TEACHING

PIYADASSI THERA

삐야다시 스님 지음
정원 스님 옮김

(The Wheel Publication No. 5 A/B)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일러두기


 

1. 주(註)에 표기된 경(經) 이름 다음의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는 빠알리어본 경전(영국 빠알리성전협회-P.T.S. 간행)  의 권수와 쪽수를 각각 나타내며,『법구경󰡕이나 『숫따니  빠따』뒤의 숫자는 게송 번호임.

2. 여기 나오는 고유명사는 모두 빠알리어 음을 취했음.

3. 아랫단의 주는 원주(原註)이며, 역주(譯註)는 [역주]라고   표시하였음.


 

부처님, 그 분


그 분 세존 응공 정등각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멀리계시는 것 같지가 않다. 그분의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들의 귓전에 속삭이듯 일러주고 있다. 삶의 투쟁에서 도망치지 말고 냉철한 눈으로 맞서라고. 그리하여 이생에서 보다 큰 향상과 성숙을 위한 기회를 찾으라고.

인격이야말로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값진 것이다. 더욱이 부처님처럼 인류의 뇌리에 깊은 감동으로 아로새겨져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무언가 생기가 약동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분으로 참으로 경이로운 분임에 틀림이 없다.

바르트(Barth)가 ‘그 분이야말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위엄을 지닌 분으로, 살아 숨쉬는 그 모두에 대한 자비심과 고통받고 있는 모두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지닌 분이다. 그리고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 완전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한 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귀감이다.’1)라고 말하였듯이.”

󰡒그 분의 메시지는, 형이상학적인 미묘한 문제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낯익은, 그러면서도 항상 새롭기만한 근원적 메시지로서, 지성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깊은 귀의를 받았었다.”2)

불교는 인도의 바라나시(베나레스)시(市) 근처의 사르나트에서 탄생하였다. 처음에는 겨우 다섯의 제자와 더불어 시작됐지만 해가 지나면서 수많은 나라로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는 6억이 넘는 인류가 신봉하는 대종교가 되었다. 이렇듯 불교가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본래 지니고 있는 가치와 합리적 정신에 호소하는 설득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도 불교의 발전을 도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폄에 있어서 결코 삿된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그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들이 사용한 유일한 무기는 바로 보편적인 사랑[慈]과 연민[悲]이었다.

또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신앙을 깨뜨리지 않고 평화롭게 전해졌다는 점 또한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종교사상 유례가 드문 대대적 전교사업을 펴면서도 무력이나 강제적 수법, 그 밖에 어떤 비난받을 방법도 쓴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강제에 의한 개종은 불교도들에게는 낯선 얘기이며,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이 지극히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이었다. 불교가 다른 종교를 헐뜯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처럼 평화로웠기 때문에 불교는 문명세계의 다양한 문화권 속으로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리스 데이비즈 박사3)는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불교의 긴 역사를 통틀어 불교도들이 아무리 장기간에 걸쳐 득세를 한 곳일지라도 타종교인을 박해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탄생


이 위대한 종교4),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살았었고,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

hattha)5)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분의 아버지, 숫도다나(Suddhodana)는 크샤트리아(무사)계급에 속한 왕으로 현재 네팔 국경지역 근처의 까삘라와투[迦毘羅城]에서 샤카[釋迦] 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고따마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고따마 숫도다나라고 불리었고 그의 비(妃)는 이웃 꼴리야 족의 공주 마하마야였다.


오월 보름날, 때는 봄철, 나무는 잎과 꽃․열매가 무성하고 사람과 새․짐승들이 모두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때 마하마야 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성대하게 꾸민 마차를 타고 까삘라와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하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중도에 끝나 버렸다. 왕비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 아래서 아들을 낳았다.

 

룸비니(현 지명은 룸민데이)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백마일 거리에 있으며 눈 덮인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그로부터 316년 후 아쇼카 황제6)는 싯닷타 왕자가 태어난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쇼카 문자 93자로 된 다섯 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붓다,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āte Sākyamuni)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법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 장군7)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째 되던 날, 왕은 여덟 명의 현자를 청하여 아기의 이름을 짓고 또 왕자의 앞날을 점쳐 달라고 부탁했다. 현자들은 왕자에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란 뜻으로 싯닷타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바라문들은 심사숙고한 후 일곱 명은 두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전 세계의 통치자인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이 되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세속을 떠나 출가한다면 왕자님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되어 사람들을 무지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현명하고 젊은 콘단냐만은 왕자를 바라본 후 오직 한 손가락만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는 언젠가는 진리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정등각자가 될 것입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 마하 마야 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이모 고따미 빠자빠띠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들이 아기에게 쏟은 정성은 극진하여 아기는 온갖 호강을 다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왕은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도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왕자는 갖가지 학문에 능통하게 되었고 무술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닷타 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 깊은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네 가지 충격적인 체험
 

왕자가 장성하자 부왕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왕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현자 콘단냐의 충격적인 예언이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정말 어느 날엔가 왕자가 훌쩍 집을 떠나 고행자의 떠돌이 생활로 뛰어들까봐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관습대로 왕자를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꼴리야 성의 수빠붓다 왕과 빠미따 왕비의 외동딸이며 왕자의 외사촌인 아름다운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시켰다. 공주는 왕자와 동갑이었다.
 

왕자의 생활은 참으로 호사스러웠다. 기록에 의하면 왕자는 인도의 세 계절에 맞는 궁전을 각기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세속생활의 즐거움이라면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는 가운데 춤과 노래, 사치와 쾌락에 파묻혀 괴로움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아들을 쾌락 속에 묻히게 하여 세속에 붙잡아 두려는 부왕의 노력도 결국에는 허사였다. 호기심어린 아들의 눈으로부터 인생의 모든 고(苦)를 감추려는 숫도다나 왕의 노력은 오히려 싯닷타 왕자의 탐구심만 키워 주어 결과적으로 진리와 깨달음을 구하려는 결의를 더욱 굳혀 줄 따름이었다. 철이 들면서 왕자는 차츰 세상의 비애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느 날 왕자가 마부 찬나를 데리고 왕실 정원으로 놀러가다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노쇠한 한 늙은이가 기력이 완전히 쇠잔하여 슬픈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왕자님, 도와주세요. 나를 일으켜 세워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집에도 못가고 죽을 것 같아요.”8)
 

이것이 왕자가 경험한 최초의 충격이었다. 또 두 번째는 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버림받은 한 사내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병 때문에 전신의 기력이 탈진되어 인간다운 우아함이나 기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다.9) 세 번째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화장터로 가면서 비통해 하는 어느 친족들의 장례행렬을 만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런 비참한 광경들에 왕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마부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도,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도, 그 밖의 모든 친척들도, 아니 그 누구도 예외없이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왕자는 한 출가 사문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문은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앞만 바라보며 신중한 걸음걸이로 고요하고도 침착하게, 초연하고도 걸림없는 당당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왕자는 사문의 평온한 모습에 깊이 감동되었다.

찬나는 이 사문이, 생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진리를 찾아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집을 떠나 세속을 등진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순간 왕자의 마음속에 출가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왕자는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궁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뇌와 번민에 싸여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속에 마침내 한 가닥 서광이 비쳐든 것이다. 궁궐 밖 세상을 접하면 접할수록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왕자는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궁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에게 장애(Rāhula)10)가 생겼구나’ 라고 말하면서 왕자는 궁궐로 들어갔다.
 

위대한 출가


 

그날 밤, 달빛은 교교하고 사위는 적막에 잠긴 가운데(그 날은 유월 보름날 저녁이었다) 왕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의 절정, 젊은 시절은 늙음으로 끝나고, 인간의 감관은 가장 필요할 때에 그를 저버린다. 혈기 왕성하고 건장하던 사람도 병이 나면 정력과 건강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예기치 못했던 죽음이 갑자기 다가와 이 짧은 일생에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분명 이 늙음과 병듦으로부터, 이 만족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자 젊음과 건강 그리고 수명에 대해 지니고 있던 교만심(mada)이 그에게서 사라졌다. 이 세 가지 마취(교만)가 헛되고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자 그는 자기 자신과 처자, 그리고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위해, 늙고 병들고 고통받고 죽는 것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기어이 찾아내어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혔다.11)

그가 대각(大覺) 성불로 완성되는 구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깊은 자비심 때문이었다. 위대한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것도, 또 안락한 가정생활이라는 황금새장을 열어젖히게 만든 것도 이 자비심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에 마지막 눈길을 보내면서도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자비심 때문이었다.
 

꽃다운 젊은 시절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가 그의 하나뿐인 아들 라훌라를 낳은 그 밤에, 그는 아내와 아들․아버지 그리고 권력과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왕좌를 모두 떨쳐버리고 떠나갔다.
 

이제 수행자의 옷차림을 한 보살12)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숲속의 고독한 생활로 들어섰다.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평안, 즉 열반을 향한 구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리하여 위대한 출가는 이루어졌다.
 

그는 처음에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뿌따라는 유명한 두 현자에게 각기 가르침을 구했다. 그들은 선정의 대가들인 만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배우면 높은 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보살은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정을 닦았고 마침내 그 선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바라던 최상의 깨달음은 아니었다. 이 두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과 선정의 경지를 보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보살은 그의 목표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현자는 제각기 보살이 그들과 같이 머물기를 바랐다. 후계자가 되어 그들의 교단을 이끌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행자 고따마는 이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인사를 드린 후 그때껏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구극의 진리를 찾아서 떠나갔다.
 

편력 끝에 그는 마침내 가야 지방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우루웰라에 도착했다. 그곳의 조용하고, 울창한 숲과 맑은 강물이 마음에 들었다. 부근에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어서 탁발하기에도 안성마춤이었다. 이곳이야말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여겨져 여기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그가 워낙 결연한 각오로 정진에 힘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고 감복한 다섯 수행자들이 같이 정진하고 싶어 동참해 왔다. 그들의 이름은 꼰단냐, 밧디야, 와빠, 마하나마, 아싸지였다.
 

  고행

 

당시 인도에서는 심신을 정화하고 궁극적인 해탈을 얻으려면 극심한 고행이 필요하다고 믿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점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행자 고따마는 이 생각이 옳은지 그 진실성을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곳 우루웰라의 숲에서 고따마는 마음이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기를 희구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조복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신과의 싸움은 그야말로 처절한 것이었다. 나무 잎사귀와 뿌리만으로 연명하였을 뿐 아니라 그 양마저도 극도로 줄여 나갔다. 옷은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헝겊으로 기워 만든 누더기를 걸쳤으며, 잠은 시체들 옆이나 가시덤불 위에서 잤다. 이 같은 극도의 자기학대로 몸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쇠잔해 갔다. ‘나는 고행을 철저히 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열심히 했다. 나의 사지는 말라 시들어버린 갈대처럼 되었다. ……’ 후일 부처님은 지난날의 고행담을 이와 같이 감명깊게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다.13)
 

6년이란 긴 세월을 격렬하게 투쟁한 끝에 거의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원대한 목표에는 단 한 발짝도 더 다가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행이 얼마나 헛된 짓인가를 체험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분발하여 원래의 목표를 향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처럼 극도로 쇠잔한 몸으로는 어떤 길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고행과 극단적인 단식을 그만두고 다시 정상적으로 음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쇠약해진 몸은 이전의 건강을 되찾았고, 고갈되었던 기력도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다섯 동료들은 실망한 나머지 그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고따마가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이런 일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의 청정함과 정진의 힘을 확고히 믿고 있었기에 스승의 지도나 도반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최후의 시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대각(大覺)을 이루시기 바로 전날 오전, 보살이 좌선을 하고 있을 때 부유한 장자의 딸인 수자따가 우유죽을 드렸다. 이 수행자가 신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었던 수자따는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의 큰 뜻이 부디 성취되어지이다.”고 기원했다. 이것이 보살이 깨치기 전에 드신 마지막 음식이었다.
 

  마침내 깨치시다
 

가야(현재 붓다가야)의 네란자라 강 둑 위에 있는 한 나무14) 아래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정진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다.󰡐이 몸이 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보살의 노력은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것이었고, 보살의 헌신은 이처럼 시들 줄 모르는 것이었으며, 진리를 깨치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결의는 이처럼 단호한 것이었다.
 

보살은 출입식념(出入息念 anāpānasati)15)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다. 다시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모든 때를 닦아내어 평온한 마음을 이룬 다음, 이 마음을 과거 생(生)을 기억하는 지혜[宿命智 pubbenivāsānussatiρ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보살이 초저녁(오후 6시~10시)에 성취한 첫 번째 지혜였다. 다시 보살은 온갖 형태의 중생이 각기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死生智 cuti-upapātaρ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한밤중(10시~새벽2시)에 성취한 두 번째 지혜였다. 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漏盡智 āsava-

kkhayaρāṇa]쪽으로 기울였다.16)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즉 ‘이것이 고(苦)다. 이것이 고의 일어남[集]이다. 이것이 고의 멸(滅)이다.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이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번뇌로부터 해탈하였다. 그 번뇌란 감각적 쾌락의 번뇌[欲漏 kāmāsava], 존재하려는 욕망의 번뇌[有漏 bhavāsava], 무지의 번뇌[無明漏 avijjāsava]의 세 가지 번뇌였다.17) 그의 마음이 해탈했을 때 해탈했음을 아는 지혜[解脫知見]가 생겼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태어남은 소진되었다. 청정한 삶[梵行 brahma cariyam]은 완성되었고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18) 이것이 새벽녘(새벽2시~6시)에 성취한 세 번째 지혜였다. 이 세 가지 지혜를 삼명(三明)이라 한다.19)
 

다시 보살은 승리의 게송을 읊었다.
 

“‘집[個體] 짓는 이’를 찾아내려고,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태어남의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

너의 모든 서까래 부서지고

마룻대[上梁] 또한 부러졌도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어지지 않은 것(=열반)을 이루었네.

온갖 갈애 다 끝내어 버렸네.”20)
 

이렇게 보살 고따마는 5월 보름날(탄생한 날과 같은) 21),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 대의왕(大醫王), 붓다가 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그 분이 사람이라는 점, 즉, 신이라든가 초자연적 존재와 어떤 관련도 전혀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신도 아니고 신의 화신(化身)도 아니며 어떤 신화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 초인적 사람이었다. 그 분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인간의 지성과 노력의 결과로 돌렸다. 그 분은 직접 체험을 통해 인간이 그 어떤 존재보다도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어떤 스승으로부터,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간에 일체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꾸준한 정진에 의해서 보살은 최고의 정신적, 지적 성취를 달성했다. 청정의 극치에 이른 것이며 인간성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질을 완성해 낸 것이다. 문자 그대로 지혜와 자비의 구현자였고, 이 지혜와 자비는 그 후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 지침이 되었다.
 

부처님은 결코 계시 종교에서처럼 영혼을 구제하는 구세주로 자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계발하여 현실화시키는 길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실증해 보이셨다. 이처럼 부처님은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지상의 과제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이 가 닿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셨던 것이다.
 

사실,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과 관계없이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각자가 자신의 책임 하에 스스로 취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고(苦)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분은 인류 역사상 부처님이 처음이셨다.
 

  아무리 해탈을 구걸하고 빌어 봐야 그 누구도 이를 성취시켜 줄 수는 없다. 타인이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친다 해야 기껏 이런저런 지시나 가르침을 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최상의 자유는 오로지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현하여 진리에 눈뜸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을 뿐이며 인간이든, 신이든, 그 어떤 초월자에게 기도하고 간청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서도 각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짐스러운 일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 들지 말고 연구, 분석을 통해 그 해결의 길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자기가 지닌 내면의 힘과 훌륭한 자질을 계발하는 계기로 삼도록 노력하라고 일깨워 주셨다.


연기(緣起)


 

깨달은 직후 일주일 간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 앉으셔서 해탈의 무상법열(無上法悅)을 누리고 계셨다. 이레가 되던 날 초저녁 부처님은 삼매(Samādhi)에서 나와 연기(緣起)에 관해 순서대로 관하셨다.[順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즉 무지[無明]가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 의지에 의한 형성작용 또는 업지음[行]이 있고, 이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서 (재생) 식(識)이 있고, 식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명색(名色:심신의 결합)이 있고, 명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22)이 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접촉[觸]이 있고, 접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느낌[受]이 있고, 느낌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갈애[愛]가 있고, 갈애가 있음을 연으로 하여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생성과정[有]이 있다. 생성과정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늙음[老], 죽음[死], 슬픔[愁], 비탄[悲], 괴로움[苦], 근심[憂], 절망[惱]이 있게 된다. 이처럼 해서 이 모든 고의 무더기[苦蘊]가 생겨난다.”
 

그날 한밤중[中夜]에 부처님은 역(逆)으로 연기를 관하셨다.[逆觀]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생성과정이 멸하고, 생성과정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멸하게 된다.”
 

그날 새벽녘에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순(順)으로 또 역(逆)으로 관하셨다.[順逆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즉 무지가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고, 이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서 식(識)이 있고, 식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이 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접촉[觸]이 있고, 접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느낌[受]이 있고, 느낌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갈애[愛]가 있고, 갈애가 있음을 연으로 하여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생성과정[有]이 있다. 생성과정을 연으로 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늙음[老], 죽음[死], 슬픔[愁], 비탄[悲], 괴로움[苦], 근심[憂], 절망[惱]이 있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생겨난다.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생성과정이 멸하고, 생성과정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멸한다.”23)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근처에서 자리를 여섯 번 옮기며 여섯 주일을 홀로 머무셨다. 여섯 주일이 끝날 무렵, 따빠수와 발리까라는 두 상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떡과 꿀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부처님과 법24)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제자로 거두어 주십시오.”25)

이리하여 그들은 첫 재가신도(upāsaka)가 되었다.
 

법의 바퀴를 굴리시다[初轉法輪]
 

세존께서 보리수 근처에 홀로 계실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깨달은 이 법(法 Dhamma)은 심오하여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며,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여 그 즐거움에만 탐닉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진리, 즉 연기법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또한 모든 조건 지어진 것[行]의 정지(靜止), 일체의 생성요인(upadhi)의 방기(放棄), 갈애의 소진, 탐욕을 멀리함[離慾 virāga], 멸진(滅盡 nirodha), 열반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고 피곤할 것인가.”26)
 

이와 같은 생각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법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佛眼)27)으로 세계를 둘러보니, 사람들 가운데에는 눈이 엷게 가려진 사람도 두텁게 가려진 사람도 있고, 근기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있고, 선량한 자질을 가진 사람, 나쁜 자질을 가진 사람, 가르치기 쉬운 사람, 어려운 사람, 현재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위험에 당면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두루 섞여 있는 것이 여실하게 보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장중한 말씀으로 법을 기꺼이 설하실 뜻을 천명하셨다.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 있는 자들은 기대할지니라. ;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ρcantu saddhaṁ”28)
 

누구부터 법을 가르칠까 생각해 보니,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뿌따가 생각났다. 그들이 현명하고 식견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그들은 아직도 소득없는 극단적인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이 베나레스의 이시빠따나29)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아시고 세존께서는 베나레스까지 약 150마일의 도보 여행을 시작하셨다.

가야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노상에서 우빠까라는 수행자와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세존의 거룩하신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에겐 스승이 없고,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동등한 존재도 없도다.

나는 비길 데 없는 스승이며, 아라한이며,

나 혼자만이 가장 높이 깨달았도다.

모든 번뇌를 끄고

열반의 고요를 이루었도다.

나는 법의 바퀴[法輪]를 굴리러

까아시의 도성(베나레스)으로 가노라.

무지가 군림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이니라.
 

“벗이여! 당신은 일체의 승리자라는 말이군요.”하고 우빠까는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번뇌의 멸진을 이룬 사람들, 실로 그들이야말로 바로 나와 같은 승리자이노라. 일체의 악을 나는 정복했노라. 그래서 나는 승리자로다.”

우빠까는 머리를 흔들고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럴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고는 딴 길로 떠나가 버렸다.
 

부처님은 길을 따라 여행을 계속하시어 마침내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도착하셨다.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본 다섯 고행자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벗들이여! 저기 고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소. 그는 고행을 포기하고 호사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사람이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맙시다.”

그러나 부처님이 가까이 다가가시자 그들은 부처님의 위엄에 눌리어 자신들의 애당초 생각을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람은 씻을 물을 가져다 드렸다. 마련해 드린 자리에 부처님께서 앉으시자, 다섯 고행자들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전처럼 동등한 입장에서 ‘벗이여(āvuso)!’ 하고 인사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래(如來)를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여래는 (해야 할 일을) 해 마친 사람[應供:아라한]이며, 위없는 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無上正等覺者]이니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도다. 나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대들에게 법을 설해 주겠노라. 나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대들은 바로 이 생에서 그대들 스스로의 힘으로 출가수행의 목적인 무상(無上)의 청정을 깨닫고 실현하게 될 것이니라.”

그러자 다섯 사문은 “벗, 고따마여! 당신은 이전에 그처럼 금욕과 고행, 그리고 자기학대를 격렬하게 할 때도 초인적 눈과 지혜를 얻지 못했소. 이제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와 방종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초인의 눈과 지혜를 얻었다는 말이오.”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여래는 정진을 그만 두고 사치와 풍요의 생활로 돌아선 적이 없노라. 여래는 해 마친 사람이며 지고한 각자이니라. 잘 들으라, 비구들이여.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노라. 내가 그대들을 가르치겠노라. 법을 그대들에게 설해 주겠노라.”
 

두 번째도, 비구들은 부처님께 똑같은 말을 하였고, 부처님도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세 번째도 비구들은 똑같은 반문을 하였다. 부처님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일찍이 내가 그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지 말해보라.”

이와 같이 간절하신 부처님 말씀에 감복한 다섯 고행자들은 비로소 승복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상의 현자, 자신을 조어(調御)하신 분께서는 참을성과 친절로, 지혜와 방편으로 다섯 고행자의 마음을 조복시켰다. 부처님의 말씀에 감복하고 확신을 갖게 된 사문들은 드디어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중도(中道)
 

그 날, 서기전 528년 7월 보름날 저녁, 해가 지면서 때 맞춰 달이 막 떠오르고 있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부처님은 그들에게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극단은 출가자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일이니 이는 저열하고, 천박하며, 세속적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익됨이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고행이니 이는 고통스럽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익됨도 없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들 극단을 피해서 중도를 깨달았느니 이는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가져오며 적정과 신통지,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그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가지 길[八支聖道]이다. 즉,

정견(正見 : 바른 견해)

정사(正思 : 바른 생각)

정어(正語 : 바른 말)

정업(正業 : 바른 행위)

정명(正命 : 바른 생활수단)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정념(正念 : 바른 마음챙김)

정정(正定 : 바른 정)이다.”

 

다시 부처님은 그들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다. 고(苦), 고의 일어남[苦集], 고의 멸[苦滅], 고의 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의 네 가지 성스런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30)
 

이렇게 지고하신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마침내 법의 바퀴(Dhamma-cakka)를 굴리기 시작하셨다. 이 첫 법문, 녹야원의 메시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땅 위를 걷는 모든 생물의 발자국이 코끼리의 훨씬 큰 발자국에 담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포괄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각 항목을 설명하시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법들에 관해서 눈[眼 cakkhu]이, 지(智 ρāṇa)가, 혜(慧 paρρā)가, 명(明 vijjā)이, 광(光 āloka)이 나의 내면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관한 나의 통찰지혜[知見 ρāṇadassana]가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밝혀지기 전에는 나는 결코 자신이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얻었다고 선언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런 진리에 관한 나의 지견이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분명해지자 그때 비로소 나는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자 다시 나의 내면에 지견이 솟아났다. 즉 내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확고부동하며(akuppā me ceto vimutti), 금생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더 이상의 몸받음[再生]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31)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다섯 비구는 환희에 차서 세존의 말씀을 찬탄했다.
 

신사빠 숲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얼마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가는 녹야원에서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신사빠 숲의 말씀에서 다시 확인된다.
 

한 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알라하바드 근처)의 신사빠 나무숲에서 머무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신사빠 나뭇잎들을 손에 들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에 있는 신사빠 잎사귀와 저 숲에 있는 잎들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드신 잎사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편 숲에 있는 잎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 비구들이여, 내가 완전히 깨닫고서도 너희들에게 설하지 않은 것은 많다. 내가 너희들에게 설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비구들이여! 왜 내가 그 모두를 설하지 않는가? 그것들은 유익하지도 않고 청정한 삶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싫은 마음을 일으킴[厭離 nibbidā], 탐욕을 멀리 함[離慾], 멸진[滅盡], 적정[寂靜], 완전한 지적능력[神通智 abhiρρā),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그것들을 설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이러한 진리를 설하는가?

 

이 진리들은 실로 유익하고 청정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들은 싫은 마음을 일으킴, 탐욕을 멀리 함, 멸진, 적정, 완전한 지적능력,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어 준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이 진리들을 설하는 이유이다. 비구들이여! 따라서, 이것이 괴로움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니라.”32)
 

부처님은 역설하신다.

“나는 오직 한 가지를 알려 줄 따름이니 괴로움과 괴로움의 멸진이노라.(dukkhamceva paρρāpemi, dukkhas-

sa ca nirodham)”33)   

이렇듯 명쾌하게 일러주신 말씀을 올바로만 이해한다면 불교를 다 이해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이 한 가지 원리의 적용일 뿐 다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부처님이든 발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성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성제야말로 어떤 시대의 부처님일지라도 한결같이 가르치실 전형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명의(名醫) 중의 명의
 

우리는 부처님을 또한 가장 뛰어난 명의(名醫), 최고의 의왕(醫王)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분은 실로 필적할 이 없는 치유자이시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이 네 가지 진리를 설하시는 방법부터가 의사가 취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사로써 그 분은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한 후 처방을 내렸다.
 

(苦 dukkha)는 병이다[苦]. 갈애가 병의 발생원인 또는 근본 원인이다[集].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滅]. 여덟 가지 성스런 길은 그 처방이다[道].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스승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부처님이라고 불리십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부처님이 해주신 대답은 명확했다. 바로 네 가지 진리에 대해 완전한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대답은 이러하다.

 

“나는 알아야 할 바를 알았고,

닦아야 할 바를 닦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렸노라.

바라문이여, 

그래서 나는 붓다, 즉 깨달은 사람이노라.”34)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선포하시어, 법륜이 구르기 시작하였고, 또 다섯 고행자가 귀의한 곳이기 때문에 교법[法]과 승단[僧]의 탄생지가 되었다.35)
 

법의 전파
 

그 해 부처님은 우기(雨期)36)를 녹야원에서 보내셨다. 이 석달 동안 부유한 집안 출신의 젊은이인 야사를 필두로 새로이 50여명의 젊은이들이 승단에 들어왔다. 이제 부처님은 6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법을 깨닫고 충분히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들이었다. 우기가 끝나자, 부처님은 이들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결박에서 해방되었도다. 그대들도 역시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결박으로부터 벗어났도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아가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과 안녕, 행복을 위해 두루 다니라.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같이 가지 말라. 그래서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이 법을,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 법을 선포하라. 청정한 삶을, 완전하고 순결한 이 성스런 삶을 선포하라. 세상에는 눈이 과히 흐리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법을 듣지 못하면 그런 사람들마저 바른 길에 들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 것이다. 세상에는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우루웰라로, 세나니가마로 가서 법을 가르치겠노라.”37)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입멸하시는 날까지 계속하게 되는 성스런 전법활동을 시작하셨다. 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서는 인도의 크고 작은 길을 두루 편력하시며 무한한 자비와 지혜의 광명으로 그 모든 길을 가득히 채우셨다. 처음 승단은 겨우 60여명으로 시작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수천으로 늘어났다. 비구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사원이 지어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날란다, 위끄라마실라, 자갓달라, 위끄라마뿌리, 그리고 오단따뿌리 등과 같은 인도의 사원대학들이 나타나 일대 문화 중심지를 형성, 그 영향력은 전 아시아 대륙에 미쳤고 나아가 전 인류의 정신생활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45년 간 성공적으로 교화사업을 펴신 후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유훈(이 책의 106쪽 참조)을 남기신 다음 꾸시나라38)의 말라 족들의 살라나무 숲39)에서 80세를 일기(一期)로 입적하셨다.
 

부처님의 교화사업

 

45년이라는 긴 교화기간 동안, 부처님은 인도의 북부지방을 널리 편력하셨다. 그러나 우기(雨期)의 안거철에는 대개 한 곳에 머무셨다.

다음은 부처님이 안거하신 지역들을 경전에서 간추린 것이다.
 

첫해 : 바라나시(베나레스) - 7월 보름에 처음으로 법을 선포하신 후 부처님은 첫 우기를 이시빠따나에서 보내심.

 

2, 3, 4년째 : 라자가하[王舍城]의 웰루와나[竹林精舍] - 유명한 재가 후원자 수다따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이 3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그는 자선가로 유명해 아나타삔디까 즉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돌봐 주는 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꼬살라국의 사와티[舍衛城] 사람인 그는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에 왔다가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 삼보에 깊은 신심을 발하게 된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예류과40)를 성취했다. 그 후 그는 부처님의 주요 후원자로 유명해졌다. 오늘날 사헤트-마헤트로 불리는 사와티에 그 유명한 제따와나 사원[祇園精舍]41)를 지어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바쳤다. 이 사원의 유적지는 지금도 볼 수 있다.
 

5년째 : 웨살리 - 부처님은 중각강당(重閣講堂)에서 지내셨다. 숫도다나 왕이 이 해에 병이 들었다. 부처님은 부왕(父王)을 찾아가 법을 설해 드렸다. 법문을 들은 왕은 완전한 청정(아라한과)을 얻게 되었고, 일주일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누린 후 입적했다. 비구니 승단이 생긴 것도 이 해였다.(이 책의 비구니 승단 장(章), 79쪽을 참조.)
 

6년째 : 만꿀라 언덕 - 여기에서 부처님은 쌍신변(雙身變)42)을 나투셨다. 친족인 석가족의 아만심을 꺾기 위해서 까삘라와투에서 이러한 신통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적이 있다.
 

7년째 : 삼십삼천 - 이 해에 부처님은 삼십삼천에 올라가 마야 부인을 필두로 한 천신들에게 수승한 법인 아비담마를 설하셨다. 마야 부인은 싯닷타 왕자를 낳고 이레만에 죽어서 삼십삼천에 남자천신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43)
 

8년째 : 베사깔라 숲 - 부처님이 여기 계실 때 금슬 좋은 나꿀루삐따 부부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다음 생에도 이어지기를 발원했다. 부처님은 이 두 사람을 제자들 중 가장 의좋은 사이로 인정하셨다.
 

9년째 : 꼬삼비의 고시따 정사
 

10년째 : 빠아릴레이야까 숲 - 꼬삼비에서 한 비구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놓고 비구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 해의 일이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였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이 숲으로 물러나셨다. 안거가 끝날 무렵 분쟁은 해결되어 비구들은 사와티 성으로 와서 부처님께 용서를 빌었다.
 

11년째 : 에까날라 마을(마가다 국) - 『숫따니빠따』에 나오는 유명한 「밭을 가는 바라드와자 경」을 설하신 곳이 바로 여기다. 농사짓는 바라문 바라드와자가 부처님께 무례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특유의 침착성으로 이를 응대하여 결국 그 바라문을 열렬한 신도로 만드셨다.
 

12년째 : 웨란자 마을 - 부처님께서 율(律)을 제정하기 시작하신 것이 이 해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웨란자의 사건이 생긴 것도 이 안거기간 중이었다. 그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불교 수행에 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다음 부처님의 대답에 만족하여 불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과 승단이 그 해 안거를 웨란자 마을에서 보내도록 청했다. 마침 그 해에 기근이 들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말장수들이 올리는 매우 조악한 음식(말들이 먹는 보리)으로 그 철을 지내야 했다. 비록 브라만이 약속은 저버렸으나 부처님은 당신이 늘 행하시는 관례대로 안거를 마치고 행각을 떠나기 앞서 초청자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바라문 웨란자는 자신이 부처님과 제자를 청해 놓고도 가사에 골몰한 나머지 한철 내내 초청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허물을 사과한 후 다음날 부처님과 승단에 음식과 옷을 보시했다.
 

13년째 : 짤리야 바위산(짤리까 시 부근) - 이 철에는 메기야 장로가 부처님의 시봉을 들었다. 장로는 강가의 아름다운 망고 숲에 마음이 끌려 그곳에 가서 선정을 닦고 싶다고 부처님께 허락을 구했다.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부처님이 만류하셨건만 그는 거듭 졸랐다. 마침내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그곳에 갔지만 장로는 뜻밖에도 선정은커녕 감각적 쾌락, 악의, 해악심 따위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실망해서 돌아왔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메기야여!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성숙하는 데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도움이 된다. 첫째 좋은 벗(선지식), 둘째 기본적 계율에 따른 덕 있는 행위, 셋째 탐욕을 멀리함, 고요․멸진․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훌륭한 조언, 넷째 나쁜 생각들을 버리고 건전한 생각들을 지니려는 노력, 다섯째 사물의 발생과 소멸을 분명히 보는 지혜의 획득이 바로 그것이다.”44)(이 예비 수행은 보다 높은 단계의 선정을 익히기 위해 반드시 닦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14년째 : 사와티의 제따와나 정사 - 이 철에, 이제껏 사미였던 라훌라 존자가 구족계(비구계)를 받았다. 율장에 따르면 구족계는 20세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데 라훌라 존자가 그 나이가 된 것이다.


15년째 : 까삘라와투 - 싯닷타 왕자의 탄생지. 이 해에 야소다라 비의 아버지 수빠붓다 왕이 죽었다.

 

16년째 : 알라위 시(市)-이 해에 부처님은 사람 잡아먹기를 즐기는 야차 알라와까를 제도하여 추종자로 만드셨다. 알라와까와의 문답은 『숫따니빠따󰡕의 「알라와까 경」에 자세히 나온다.
 

17년째 :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정사 - 이 철에 유명한 고급 창녀이며, 의사 지와까의 누이동생인 시리마가 죽었다. 장례식에 참석하신 부처님은 왕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그 시체를 사갈 사람을 찾는 공고를 내어 보라’고 하셨다. 살아있을 때 그토록 사람들을 매혹시키던 그 몸뚱이. 그러나 누구 하나, 돈은커녕 거저 주어도 그 시신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이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대중들을 향해 읊으셨다.
 

“보라, 이 분칠 한 모습을

상처 투성이의 (뼈마디로) 엮어 이루어진

병든, 뭇사람들의 관심의 적이던

이 몸을, 거기 어디에 항상함이 있고

견고함이 있는가.”45)
 

18년째 : 짤리야 바위산 - 이 철에 한 직조공의 어린 딸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죽음을 염(念)하는 공부법46)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닦았던 소녀는 다음에 다시 친견했을 때 부처님이 던지신 네 가지 질문에 정확히 대답했다. 소녀의 대답은 매우 철학적이어서 부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소녀를 칭찬하면서 대중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 세상은 눈멀었도다. 분명히 보는 자 적도다.

겨우 몇몇 사람만이 좋은 세계(천상계)로 가는구나.

그물을 벗어난 새처럼.”47)
 

소녀는 법을 듣고 성위(聖位)의 첫단계(예류과)를 성취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녀는 요절하고 만다.48)
 

19년째 : 짤리야 바위산
 

20년째 : 라자가하 - 웰루와나 정사
 

21년부터 43년까지 : 사와티에서
 

이 스물네 번의 안거 중 열여덟 안거는 기원정사에서, 나머지 안거는 동원정사(東園精舍, 鹿子母講堂)에서 지내셨다. 이 기간 동안은 아나타삔디까와 위사카49)가 주된 시주였다.
 

44년째 : 벨루와 마을(웨살리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추정됨) - 이곳에서 부처님은 크게 앓으셨으나 의지력으로 이겨내셨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98쪽 참조.)
 

성도 후 45년째, 부처님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5월에 꾸시나라(혹은 꾸시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드셨다.
 

정각을 이루신 후 처음 20년 간은 다음의 스님들이 수시로 스승을 시봉했다. 비구 나가사말라, 나기따, 우빠와나, 수낙카따, 사가따, 라다 그리고 메기야와 사미 쭌다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 부처님께서는 일정한 시자를 정하기를 원하셨다. 그러자 사리뿌따, 마하 목갈라나 등 80여 명의 대 아라한들이 기꺼이 모두 스승을 시봉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들 아라한들이 당신을 시봉하기보다는 인류에게 직접 보다 큰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음에 틀림없다.
 

그러자 장로들은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던 아난다 장로에게 시자로 받아주실 것을 청해 보라고 권유했다. 아난다 장로의 대답이 흥미롭다.

“스승님께서 나를 시자로 삼기를 원하신다면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다른 사람들의 권유를 기다리지 말라. 너 혼자서 나를 시봉하도록 하여라.”
 

  부처님의 깨달음과 아라한의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 즉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발견과 실현은 결코 신의 섭리에 의해 선택된 어떤 특정인의 특권도 아니고, 인류사에 되풀이될 수 없는 일회성의 일도 아니다. 완벽한 청정과 지혜를 구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또 성불의 필수요건인 십바라밀50)과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불퇴전의 의지로 닦아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득한 먼 옛날에도 여러 부처님들이 계셨고, 또 미래에도 필요성이 있고 조건이 성숙되면 부처님들이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먼 미래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들의 이 시대에도 ‘불사(不死)에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그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누구나 완전한 청정(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해서 괴로움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탈(즉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는 점에서 이 사람들은 당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선언하셨다.
 

“번뇌의 소멸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실로 나와 같은 승리자들이로다.”51)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또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와 여느 아라한52)들과의 차이점도 분명히 밝히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면서 대각자이노라. 여래는 일찍이 알려진 적이 없는 길을 선포한 사람이도다. 실로 그는 길을 아는 사람이고, 길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길에 숙달한 사람이도다. 이에 반해 여래의 제자들은 여래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이노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 차이로다. 아라한이면서 대각을 성취한 여래와 통찰에 의해 자유를 얻은 제자들과의 차이점이노라.”53)

  정법의 특징


비밀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그릇된 교의임을 드러내는 표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처님은 비밀교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법을 가르침에 있어 드러난 교리와 비밀스런 교리를 각각 따로 세우지 않았다. 아난다여! 여래는 드러난 교의와 비밀스런 교의를 구별짓지 않고 법을 설해왔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주요한 지식을 제자들에게 감추는 ‘주먹 쥔 손’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54)

 

이 우주를 다 감싸는 무한대의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신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윤회라는 끝없는 헤맴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데 필요한 지식이라면 그 무엇 하나 감추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설해 주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눈 있어 볼 수 있고 마음 있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열려 있다. 또 불교는 어떤 사람에게도 총검이나 대포를 들이대고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강요에 의한 개종은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적도 없으며,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모순된다.

 

필딩 홀(H. Fielding Hall)은 그의 저서 『어느 한 무리의 넋󰡕에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불교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일찍이 그 어느 나라도 불교도들이 무력으로 약탈한 적은 없으며, 붓다의 이름으로 단란한 가정을 피로 물들인 적도 없으며, 한에 사무친 여인네들이 붓다의 이름을 입에 올려 저주한 적도 없었다. 이렇듯 붓다와 그 분의 가르침은 피의 얼룩으로 더렵혀진 적이 없다. 붓다야말로 사랑으로 이루어진 평화, 베풂으로 이루어진 평화, 연민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평화를 가르치신 분이며,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기독교 성직자 조셉 웨인(Joseph Wain)은 평한다. ‘불교는 통제가 아니라 원칙에 의한 생활, 우아한 생활을 가르치며, 그 당연한 귀결로 불교는 관용의 종교다. 태양 아래 가장 자비로운 종교체제가 불교이다. 교법의 전파과정 그 어디에서도 피를 본 적이 없는 종교이다. 신앙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박해하거나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다. 이는 기독교가 아직까지도 배워야만 할 교훈이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오늘을 아름답게 만들고 현 순간을 성화
(聖化)시키도록 가르쳤다.’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부처님은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특별히 선택된 애제자란 없었다. 제자들 가운데서 아라한과를 성취했던 제자들은 모두 청정을 완성하여 애욕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존재에로 옭아매는 족쇄들을 풀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각각 특수한 지식과 수행에 뛰어나고 또 타고난 성품에도 차이가 있어 남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스승은 그들이라 하여 특별한 총애를 주지는 않았다. 예컨대 우빨리는 낮은 카스트의 이발사 집안 출신이었지만 바라문이나 크샤트리아 계급에 속했던 수많은 아라한들을 제치고 계율에 관해 으뜸가는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는 바라문 계급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장구한 전생동안 세워온 원력 때문에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사리뿌따는 지혜에 뛰어나고, 마하 목갈라나는 신통에 뛰어났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당신이나, 당신의 가르침에 맹목적이고 굴종적인 믿음을 바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 분은 항상 지성적 탐구와 면밀한 고찰을 강조하셨다. 자유사상의 최초의 헌장이라고 일컬어 마땅할 어느 경전에서, 부처님은 깔라마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비판적 탐구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시다.

 

“그렇소,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대들은 세평이나 구전(口傳), 풍문에 이끌려서도 안 되며, 또 종교의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아니면 단순히 논리나 유추만으로, 또는 외양만을 취하여 또는 어떤 이론에 미루어 볼 때 타당하다고 해서, 또는 그럴싸한 가능성 때문에, 또는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 하는 생각 때문에 끌려가서는 아니 됩니다. 깔라마인들이여! 당신들 스스로 생각해서 이런 것들은 건전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롭지도 못하다고 알았을 때, 그때는 당연히 그러한 것들을 거부하도록 하시오. (……)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서 ‘이런 것들은 건전하고, 나무랄 데 없고 이롭다’고 알았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 거기에 머물도록 하시오.”


그런 연후 부처님은 물으셨다.

“자,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기 어떤 사람에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일어났다고 칩시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에게 이득이 되겠소, 손실이 되겠소. 탓할 일이겠소, 탓하지 않아야 할 일이겠소?”

“존사(尊師)시여! 그런 것들은 그에게 손실이 되며, 그런 것들은 탓할 일입니다.”
 

“자, 깔라마인들이여!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떤 사람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칩시다. 이것은 그에게 이득이겠소, 손실이겠소, 탓할 일이겠소, 아니겠소?”

“존사시여! 그에게 이로움이 되고 탓할 점이 없습니다.”


“그렇소, 깔라마인들이여! 방금 내가 그대들에게, ‘그대들은 세평이나 구전, 풍문에 이끌려서도 안 되며, (……) 건전하고, 나무랄 데 없고, 이롭다고 알았을 때는 받아들여 거기에 머물도록 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하려 함이오.”55)

 

순전히 믿음 때문에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불교의 정신과 어긋난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가르침을) 알고 이를 따르면서 그대들이 ‘우리는 스승을 기리고 존경하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든다’고 말할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찾아낸 사실만을 말하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56)


부처님은 항상 사실을 직시하였으며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하거나 양보하지 않으셨다. 또 그 분은 우리 역시 어떤 것을 정당한 이유 없이 무분별하게 진실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해탈을 스스로 이룩해 내는 것이다.

“그대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래는 다만 길을 일러줄 따름이다.”57)
 

“그대 스스로가 자신의 섬이 되라, 그대 스스로가 자신의 피난처가 되라. 남을 피난처로 의지하지 마라. 법을 섬으로 삼고, 굳건히 붙들어라. 법을 피난처로 삼고, 굳건히 붙들어라. 그 밖에 다른 어떤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지 말라.”58)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처님이야말로, 사상 최초로 인류에게 해탈은 스스로 찾아야지 그 어떤 구원자에게, 그것이 인간이든 또는 신이든 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남이 우리를 낮은 단계의 삶에서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주고 또, 궁극적으로 해방시켜 준다는 관념은 우리를 게으르고 나약하며, 무기력하고, 어리석게 만들기 쉽다. 이런 종류의 신앙은 품위를 떨어뜨리고,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위엄을 여지없이 짓눌러 버린다.

 

깨달으신 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립심을 기르도록 권하셨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고(苦)로부터의 해방은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갈고 닦음으로써 나름대로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참된 청정

불교사상에 있어서는 신앙심이나 외경심 같은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법의 진리성은 오로지 통찰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며, 그 어떤 존재 - 그 정체를 우리가 알건 모르건 간에 - 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이나 외경심을 갖는다고 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부처님은 맹목적으로 전지전능한 신을 믿거나 외경하는 것을 진리를 이해하는 접근방식으로서 찬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소득없는 의례․의식에 집착하는 것도 반대하셨다. 단식이라든가, 성수에 목욕한다든가, 동물을 희생으로 바친다든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들은 겉으로 씻어내는 행위에 불과할 뿐,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을 정화시키거나 성스럽고 고귀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바라문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은 적이 있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해탈을 구하려면 어떻게 스스로를 닦아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신 후, 이에 덧붙여 마음의 때가 사라지고, 청정한 삶을 완성하고, 할 일을 해 마친 사람은 안으로 목욕하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하셨다.
 

마침 부처님 가까이에 앉아 있던 바라드와자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고따마께서는 바후까 강에 목욕하러 가십니까?”

“브라만이여! 바후까 강에는 어떤 공덕이 있는가?”

“고따마시여! 바후까 강은 많은 사람들이 신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악업을 바후까 강에서 씻어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강에서 목욕한다고 해서 마음의 때나 죄가 씻어질 수는 없다는 점을 납득시킨 다음 이렇게 가르치셨다.

“브라만이여! 이 법과 계율에서 목욕하면 어떤 존재든 안락함을 얻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는다면, 또 그대가 확신에 차있고 옹졸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가야 강59)에 가야 한단 말인가. 그대 집에 있는 우물물 또한 가야의 물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60)


『법구경』 165 게송은 가르쳐 준다.


 

  “악을 행하는 것도 자신이요,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도 자신이며,

악을 범하지 않는 것도 자신이요,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것도 자신이다.

청정과 더러움이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아무도 남을 청정하게 해줄 수는 없다.”


카스트 문제


카스트61) 체제는 당시 인도의 바라문 계급들에게는 사활이 달린 중대 관심사였으나 부처님은 이 제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 하여 철저히 반대 입장을 취하셨다. 따라서 이 제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셨다. 승단에서는 모든 카스트가 화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이는 마치 여러 강물이 바다에 들면 하나가 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출가 전의 이름도, 카스트도, 종족도, 모두 버리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따름이니 그것이 승가(
saṅgha)다.

 

부처님의 혈통을 묻는 바라문 순다리까 바라드와자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는 바라문도, 왕자도,

농부도 그 밖에 무엇도 아니오.

세상의 모든 계층을 다 안다오.

그러나 알기에 나는 내 길을

자아를 멸한 사람으로서 가고 있다오.

집 없이, 누더기 걸친 채

머리를 깎고, 나는

홀로 내 길을 걷소, 조용히.

나의 출신을 묻는 것은 부질없을 뿐.”62)
 

또 한 번은 카스트를 믿고 건방을 떠는 한 바라문이 “서라, 이 까까중아. 멈춰라. 이 천민(노예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이)아!” 하고 부처님을 모욕한 일이 있었다.
 

스승께서는 조금도 언짢은 기색 없이 점잖게 대답하셨다.

 

“출신 때문에 천민이 되는 것이 아니오.

출신 때문에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행위가 사람을 천민으로도 만들고,

행위가 사람을 바라문으로도 만드는 것이오.”63)

 

그러고서는 정말 천민의 특징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마침내 오만하던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뉘우치어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께서는 승단의 고귀한 삶을 실천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 사람의 카스트와 계급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미천한 계급의 출신으로 후에 승단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부처님은 그때껏 카스트와 계급으로 사분오열 되어있던 사람들을 관용과 화합으로 서로 함께 어울리도록 노력하신 당대 유일한 스승이셨다.
 

승단의 계율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였던 우빨리는 원래 이발사였는데, 이 직업은 비천한 계급의 사람이 종사하는 가장 천한 직업의 하나였다. 후에 아라한이 된 수니따도 천한 직업인 청소부 출신이었고, 비구니 승단의 뿐나와 뿐니까는 노예출신이었다. 리스 데이비즈 부인에 의하면 공부를 이뤄 깨달음을 성취한 비구니의 8.5퍼센트가 글도 배우지 못한, 천대받던 카스트 출신이었다고 한다.64)

 

수제자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는 부처님께서 대각을 이루신 후 맨 먼저 찾으셨던 지역 중의 하나이다. 출가 초기 수행시절에 부처님은 세니야 빔비사라 왕에게 대각을 성취하면 꼭 라자가하 성을 찾겠노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뵙게 되자 크게 기뻐하여, 그 자리에서 가르침을 받은 다음 바로 재가신도가 되었다. 부처님을 열렬히 신봉하게 된 왕은 며칠 후에는 자신의 유희공원으로 쓰던 웰루와나 동산을 부처님께 바쳐 머무시도록 했다.

 

당시 라자가하는 새로운 사조의 중심지로서 많은 철학유파가 번성하고 있었다. 그 중에 산자야라는 사상가가 이끄는 학파가 있어 250명의 추종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 중 우빠띠사와 꼴리따는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두 상수제자가 되었으니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부처님을 만난 인연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라자가하의 거리를 거닐고 있던 우빠띠사는 한 사문의 엄숙한 용모와 고요하고도 위엄있는 거동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과거 수많은 생을 통해 완성을 성취하고자 노력해 온 우빠띠사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제 바야흐로 결실을 맺을 순간에 이르렀음인지 이 날 따라 그 사문의 모습은 우빠띠사의 마음을 유달리 사로잡았다. 이 사문은 다름 아닌 부처님의 최초의 다섯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아싸지였다. 우빠띠사는 이 고상한 사문이 누구의 제자이며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아라한이 탁발을 마칠 때까지 계속 따라갔다.


“벗이여, 당신의 모습은 우아하고, 당신의 눈빛은 맑게 빛납니다. 누가 당신을 출가하도록 설득했습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어떤 법
(가르침)을 따르고 계십니까?” 하고 묻자, 아싸지 존자는 많은 말을 하기 꺼리는 듯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교의와 계율을 길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그 대의만 간략히 말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우빠띠사의 대답이 주목할 만하다.

“좋습니다. 벗이여, 적든 많든 좋으실 대로 말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도 그 대의입니다. 장황한 말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러자 아라한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포용하는 연기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게송을 한 수 읊었다.

 

“원인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것,

그에 관해 여래께서 그 원인을 밝혀주셨네.

또 그것의 멸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나니,

이것이 대 사문의 가르침이라네.”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m hetuṁ tathāgato āha

  Tesam ca yo nirodho

  Evam vādi mahā samano.’
 

우빠띠사는 이 게송을 듣자 바로 그 뜻을 이해했다. ‘생겨난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yamkiρci samudaya dhammam sabbam tam nirodha dhammam)’임을 그 자리에서 깨닫고 깨침의 첫단계(예류과)를 성취했다.


  기쁨으로 가슴이 벅찬 그는, 서둘러 친구 꼴리따에게 달려가 아라한을 만난 사실과 가르침 받은 내용을 얘기해 주었다. 꼴리따 역시 친구가 전해 주는 게송을 듣고서 곧바로 깨침의 첫 단계를 얻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스승 산자야에게 나아가 부처님을 따르자고 권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로서의 명망을 잃게 될까 두려워한 산자야는 제자들의 권유를 거절했다. 할 수 없이 꼴리따와 우빠띠사는 산자야의 강력한 만류를 무릅쓰고 그를 떠나 웰루와나 정사로 갔다. 부처님에게 귀의할 뜻을 사뢰자 부처님은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며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들이여! 법은 잘 설해져 있도다. 고귀한 삶을 통해 고를 완전히 없애버리도록 하라.”

그리고 그들을 승단에 받아들이셨다. 그들은 해탈을 성취한 후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승단을 이끄는 두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었다.

 

부처님이 웰루와나 정사에 머무실 때 승단에 들어온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제자는 바라문 출신의 현자 마하 까사빠였다. 그는 구경해탈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해 거대한 부(富)도 팽개치고 출가한 사람이었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시자 그로부터 3개월 후, 왕사성 근처의 칠엽굴에서 아라한들의 대회동(1차결집)을 주관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아자따사뚜 왕의 후원을 받아 경과 율을 최초로 정리, 편찬한 그 모임은 불교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구니 승단
 

초기에는 승단이 남자들로만 구성되었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여자들이 승단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가여신도들 가운데는 세속을 벗어나 청정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신심깊은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싯닷타 태자의 양모였던 고따미 빠자빠띠를 설득하여 그를 앞세우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여인들의 출가 수계를 허용해 주시도록 탄원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전히 이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난다 존자가 나서서 부처님께 간청했다. 존자는 여인들의 열의에 감복하고 그리고 그들이 상심하는 모습에 동정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부처님께서 양보하셨으나 여인의 수계에 대해서는 8가지 제한조건을 더 첨부하셨다. 이렇게 하여 성불 후 5년째 되던 해에 비구니 승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역사상 초유의 일로, 일찍이 여인들의 출가생활을 위해 단체가 만들어졌던 적은 없었다. 비구니 승단이 탄생되자 갖가지 인생행로를 걸어온 여인들이 속속 승단에 들어왔다. 비구니 승단의 지도자는 케마와 우빨라완나 두 장로니(長老尼)였다. 이들 고귀한 비구니들이 해탈을 향해 노력하는 정경과 마침내 해탈을 이루고서 읊조린 환희의 찬가들이『장로니게송집』에 생동감 넘치게 기록되어 있다.
 

 까삘라와투에서


라자가하에 계시던 중, 부왕께서 꼭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은 세존은 까삘라와투로 향하셨다. 그러나 까삘라와투에 이르자 부처님은 곧바로 궁전으로 드시질 않고, 관례대로 도시 밖의 숲에 머무셨다. 다음 날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들고 까삘라와투의 거리에 나아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여법히 탁발을 하셨다. 숫도다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부처님께 달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십니까? 왜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십니까? 우리 가문에서 일찍이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왕이시여, 대왕과 대왕의 가족들이 대대로 왕의 후예이듯이 나는 옛 부처님들의 후예입니다. 옛 부처님들은 음식을 구걸하며 언제나 탁발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법을 설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깨어 있으십시오. 마음을 챙겨 지니십시오. 법다이 사십시오. 법답게 사는 사람들은 이생에서도, 내생에서도 행복하게 삽니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왕은 확고하게 법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법을 이해한 것이다. 그런 연후 부처님께서는 궁전으로 향하셨다. 궁에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께 경배 드리러 나왔으나 야소다라 비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처님은 몸소 그녀에게 갔고, 부처님을 뵙자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전생담을 들려주시며 그 전생에 그녀의 공덕이 얼마나 위대했던가를 낱낱이 자세하게 밝혀주셨다.65) 이런 이야기를 듣자 그녀도 드디어 법을 이해하고 받들게 되었다. 후에 여성승단이 만들어지자 야소다라도 출가하여 최초의 비구니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부처님이 궁전에 계실 동안 야소다라 비는 아들 라훌라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세존에게 보내면서 일렀다.

“라훌라야! 저분이 네 아버지이시다. 가서 너의 상속물을 달라고 하렴.”

라훌라 왕자는 부처님께 다가가 그 앞에 서서 말했다.

“현자시여, 당신의 그늘은 즐겁습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궁전을 떠나자, 라훌라 왕자는 따라가며 말씀드렸다.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세존은 사리뿌따에게 일렀다.

“그래, 그럼 사리뿌따여, 이 아이를 승단에 넣도록 하시오.”

그러고서는 사리뿌따에게 수계하는 방식을 자세히 일러주셨다.

“먼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입힌다. 한쪽 어깨에 가사를 단정히 걸친 다음, 수계자는 스님들에게 예배한 후, 스님을 향하여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이 자세가 잘 안 되면 꿇어앉아도 된다.) 두 손을 올려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법에 귀의합니다.

승단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두 번째, 법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승단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세 번째, 법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승단에 귀의합니다.66)

 

5부경67) 중 하나인 『중부󰡕에는 ‘라훌라에게 주는 말씀’이란 제목의 경이 세 개나 실려 있다.(61, 62, 147경) 어린 라훌라에게 법을 가르치고 있는 이 경들은 한결같이 계율과 선정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마하 라훌라와다경」68)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라훌라야! 자애[慈]69)를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자애로운 마음을 닦으면 나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아파함[悲]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을 닦으면 잔인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喜]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닦으면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평온함[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평온한 마음을 닦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70) 라훌라야! (육신의) 더러움[不淨]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더러움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애욕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무상의 개념[無常想 aniccasaρρā]71)을 관하는 공부를 닦아라. 무상의 개념을 관하는 공부를 닦으면 아만(‘내가 있다’, ‘나다’라는 생각 asmi-māna)이 사라지게 된다. 라훌라야! 출입식(出入息)을 염하는 공부(ānapāna sati)를 닦아라. 라훌라야! 출입식을 염하는 공부를 닦아 자주 익히면 얻는 바가 많아서 크게 이익되리라.”

  불전에 나오는 여인들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바라문교의 영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때로는 남성의 예속물로서 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 여성들 중에도 철학적 문제와 같은 지적 분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예가 더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가 현저히 상승된 것은 역시 부처님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과 큰 도량으로 언제나 여성들을 자상하고 정중하게 대하셨으며 그들에게도 똑같이 청정 그리고 성스러움에 이르는 고귀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에 계신 친구요, 아내는 남편에게 최상의 벗이다.”72)


암바빨리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자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공양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올리는 음식을 다 드신 다음, 보답으로 법의 선물
(법공양)을 주셨다. 그 가르침을 받고 깊이 신심을 일으킨 여인은 지금까지의 불성실했던 세속 생활을 청산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우 열심히 정진한 끝에 드디어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그 크신 자비심으로 여인들을 도와주신 예로서 끼사고따미의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감명깊은 일화이기 때문이다.
 

사와티 태생인 끼사고따미는 고따마족이었고 따라서 부처님과는 친척이 되는 셈이다. 너무나 몸이 야위고 연약해서 사람들이 끼사(말라깽이)고따미라고 불렀다. 여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결혼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걸음마도 하기 전에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 아기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을 안겨주었다.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향한 한없는 모정 때문에 어머니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슬픔에 가슴이 메어져 정신이 나간 여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기를 살려낼 약을 구하러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러나 사와티 성의 어떤 의사도 죽은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헤매던 끝에 마침내 부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세존의 발아래 내려놓으면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대비주(大悲主)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누이여! 좋은 영약이 있느니라. 내가 그대의 고통을 치유해 줄 테니 가서 겨자씨를 얻어 오너라. 그러나 고따미여! 겨자씨를 얻을 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라.”

그러자 고따미는 곧 마을로 쫓아가서 겨자씨를 구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에서 모두 겨자씨를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많은 집 중에 어디에도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던 고따미는 마침내 죽는다는 게 얼마나 보편적인 사실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이 덧없다는 것을, 또 모든 만남은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시체 안치장에 안치한 후 사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이 법,

이는 마을의 법도 도시의 법도 아니네.

이 씨족의 법도, 저 씨족만의 법도 아니네.

온 세상 아니 천상세계마저도

이 법에선 벗어날 수 없네.”73)
 

부처님의 지도하에 끼사고따미는 무상이야말로 모든 조건 지어진 존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첫 번째 성위인 예류과를 성취했다.
 

이 밖에도 부처님께서 삶의 간난신고로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신 예는 수없이 많다.
 

 환자를 보살피시다


병든 사람들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심 또한 각별하셨다. 한 번은 뿌띠가따 띠싸라는 비구가 궤양에 걸려 더러운 침대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부처님이 보셨다. 그 즉시 스승께서는 따뜻한 물을 준비하시어 아난다 존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수 이 병든 비구를 씻어주고 자상하게 병구환을 해주셨다. 그런 다음 법을 설하시어 이 병자가 죽기 전에 아라한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주셨다. 띠싸 아라한이 입적하자, 장례식을 법에 맞추어 거행한 다음 부처님은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도록 조치하셨다.74) 그 외에도 여러 번 스승께서는 병든 비구들을 몸소 돌보아 주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촉구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를 시중들 듯 그 마음으로 환자를 시중들도록 하라.”75)

 

이렇듯 부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측량할 길이 없고 너무나 넓어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간곡히 가르치셨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자식을 그것도

하나뿐인 자식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듯이

너희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빠짐없이 감싸는 생각을

온전히 지키도록 하라.76)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자비로 넘치고 있듯 부처님의 행동도 한결같이 자비심으로 가득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눈을 뜨게 하고, 환희에 젖게 만들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편력하는 동안 부처님은 무지로 말미암아 삿된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신을 섬기기 위해 짐승을 도살하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셨다. 이들에게 부처님은 타이르셨다.


“생명이란 

누구나 뺏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는 것.

모든 생물은 제 목숨을 사랑하여 지키려 애쓰네.

목숨은 경이롭고, 소중하고, 즐거웁다네,

비록 하찮아 보이는 미물에게도.”77)


실로 당시는, 사람들이 신에게 자비를 구한답시고 무자비한 짓을 서슴지 않던 시절로, 제멋대로 신을 상정하고는 그 제단에 무고한 동물들을 희생으로 올림으로써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끔찍한 짓거리를 자행, 전 인도를 피로 얼룩지게 만들던 시절이었으며, 고행자와 바라문들의 그릇된 의례 의식 때문에 인간은 재앙을, 동물들은 단말마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절에 자비의 화신인 부처님이 나타나서 일찍이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가셨던 그 옛길,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정의로운 그 길을 다시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평온과 침착
 

득과 실, 호평과 악평, 찬탄과 비난, 고통과 행복78) 등등의 온갖 생의 우여곡절이 부침하는 와중에 처해서도 부처님은 조금도 흔들리는 일이 없으셨다. 단단한 바위처럼 그분은 요지부동이셨다. 행복한 일이 생겼다 해서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았고,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았다. 물론 언쟁이나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은 더욱이나 없으셨다.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지 않노라. 세상이 나를 두고 싸우려들 뿐이노라. 법을 설하는 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노라.”79)

또 제자들을 이런 말씀으로 훈계하고 계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여래를 헐뜯고, 법을 헐뜯고, 승단을 헐뜯는다 해서 그 때문에 난처해하거나 적대심, 악의 따위를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그 때문에 못마땅해 하거나 성을 내면 정신적 향상에 방해를 입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 옳고 어디까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너희들은 그런 때에 사실이 아닌 것은 해명함으로써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주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또한 남들이 여래를 추켜올리고, 법을 추켜올리고, 승단을 추켜올려 말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우쭐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들의 내면의 성숙에 큰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런 때는 옳은 말은 옳다고 인정하고 그 옳은 까닭을 설명해줘야 한다.”80)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반대자나 적대자에게까지도 불친절한 언사를 쓰신 경우는 한 번도 없으셨다. 부처님과 그 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부처님은 결코 그들을 적으로 보지 않으셨다. 남들이 격렬한 어조로 비난해 올지라도 부처님은 성을 내시거나 혐오감을 품거나, 불친절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장에서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견뎌내듯

그처럼 나는

남들의 비방과 적대적 안색을 참아내리라.”81)

 데와다따

 

부처님의 위와 같은 인욕정신은 데와다따와의 관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데와다따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승단에 들어와 범부의 신통력을 얻은 사람이었다. 뒷날 그는 승단의 지도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되면서 부처님과 두 수제자 사리뿌따, 마하 목갈라나에 대해 시기심과 악의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데와다따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 젊은 아자따사뚜 왕자에게 접근하여 교묘히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웰루와나 정사에서 왕을 비롯한 많은 대중들에게 법문을 설하시고 계실 때 데와다따가 부처님에게 다가와 인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제 연로하시어 기력도 쇠잔해지셨습니다. 스승님은 모든 근심, 걱정을 벗어나 은거생활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승단은 제가 이끌어 가겠습니다.”
 

부처님이 이 제안을 거부하시자, 데와다따는 당황하여 화를 내면서 부처님에게 증오와 악심을 품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 길로 그는 못된 흉계를 품고 아자따사뚜 왕자를 찾아가 왕자의 감춰진 야심에 불을 붙이는 말을 했다.

“왕자님이여!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기 전에 언제 지배자가 되어 보겠습니까? 나는 세존을 죽이고 승단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아자따사뚜가 아버지인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데와다따는 불한당들을 매수하여 부처님을 해치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실패하자 다시, 부처님이 라자가하에 있는 기자꾸따 언덕을 오르고 계시는 기회를 틈타 그 자신이 직접 바위를 세차게 던져 굴렸다. 바위는 굴러내리다 둘로 쪼개지면서 조그만 파편이 부처님에게 튕겨 발에 가벼운 상처를 내었다.

그 후에 다시 데와다따는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부처님을 향해 내몰았다. 그러나 이 짐승은 부처님의 자애의 힘에 눌려 부처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버렸다.

다시 데와다따는 승단 내에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일으킨 불화도 길게 끌어지지를 않았다. 모든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자, 데와다따는 실의에 빠져 물러났다. 얼마 안 되어 그는 병이 들었고 병상에서 자신의 어리석었던 짓을 뉘우친 끝에 부처님을 친견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들 것에 실려 부처님께 가던 중 운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 그는 참회의 말을 하면서 부처님에게서 귀의처를 구해마지 않았다.82)
 

 마지막 나날들

 

세존의 입멸을 그린 『대반열반경』83)은 부처님 생애의 마지막 몇달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빠짐없이 소상하고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세존께서는 팔십의 고령에 다다르셨고, 그의 두 수제자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는 이미 석달 전에 입적했다. 고따미 빠자빠띠, 야소다라, 라훌라도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때 부처님은 웨살리에 계셨다. 우기가 닥쳐오고 있었으므로 많은 비구대중과 더불어 우기를 나기 위해 벨루와로 가셨다. 거기서 중병이 부처님을 엄습하여 심한 통증을 일으켰으나 세존께서는 침착한 가운데 정념을 유지하며 이를 견디셨다. 바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지만 승가대중에게 유훈도 남기지 않고 입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엄청난 의지력으로 병과 싸워 이겨내심으로써 생명의 가닥을 이어 나가셨다. 점차 병환이 호전되어 마침내 완전히 회복되자 그는 시자인 아난다 존자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고 나이도 찼다. 내 여행은 이제 막이 내려지고 있다. 내 수명은 다 되어 이제 여든에 접어들었다. 아난다야! 낡은 수레를 굴리려면, 가외로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것처럼 여래의 육체도 의지력을 많이 기울여야 간신히 지탱할 수 있다. 여래의 육신이 편안하려면 여래가 바깥 경계에 마음을 써서 속세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이 고된 일을 그만두고 무상정
(無相定)84)에 들어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아난다여! 따라서 그대 자신을 자기의 섬으로 삼을지니라. 그대 자신을 자기의 의지처로 삼을지니라. 남을 의지처로 기대서는 안되느니라. 법을 섬으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법을 의지처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다른 어떤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지금도, 내가 간 다음에도, 누구든지 자신을 섬으로 삼아야 할지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할지며, 어떤 바깥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될 것이니라! 다만 그들은 모름지기 향상하려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어야 하느니라.”

 

벨루와를 떠나 부처님께서는 마하와나로 여행을 하셨고, 거기에서 웨살리 근처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을 모두 모이게 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내가 깨친 대로 법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대들은 법에 정통하도록 노력해서 이를 닦고, 이에 대해 명상하고, 널리 이를 펴도록 하라. 이 세상에 대한 연민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선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다.

“내 나이 이제 가득 차서 생은 바야흐로 끝나려 한다.

나는 너희들을 떠난다, 오로지 나 자신에 의지하여 나는 가노라!

비구들이여! 부디 방일하지 말고 힘써 마음 챙기며 계율을 잘 지켜라!

결의를 굳건히 다져라! 네 자신의 마음을 빈틈없이 지켜보라!

이 교법과 계율85)을 싫증내지 않고 단단히 붙드는 사람은 생의 바다를 건너가 비탄을 끝내게 될 것이다.”

  

이제 병에 지쳐, 허약해진 몸으로 세존께서는 힘들게 여행을 계속하셨다. 아난다 존자와 수많은 대중들이 그분을 수종했다. 이렇듯 길고 피곤한 마지막 여행 중에서도 부처님은 남을 보살피는 마음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마지막 공양을 올린 대장장이 쭌다에게 법문을 설하여 제도하시고, 또 도중에 만난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 뿌꾸사를 위해서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일일이 질문에 대답하여 제도함으로써 그를 부처님과 법과 승단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발심시켜 주셨다.
 

세존께서는 드디어 꾸시나라 (또는 꾸시나가라)의 말라 족들의 살라나무 숲에 도달하셨다. 바로 그의 길고 먼 여행의 종착지였다. 이곳이 마지막 휴식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피곤하구나. 아난다여, 눕고 싶다. 저 두 그루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여 자리를 펴다오.”

그러고서는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이루신 채 한 다리를 다른 다리에 포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자리에 누우셨다. 다시 아난다 존자에게 일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는 사람,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값진 경의로 여래를 올바로 존경하고, 예배하고, 경모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난다여! 그대는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도록 성실하라.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살도록 하라. 아난다여, 이와 같이 노력할지니라.”
 

 마지막 귀의자

 

그때 마침 수밧다라는 떠돌이 고행자가 꾸시나라에 있던 중 부처님의 입적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평소에 고뇌하던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부처님께 여쭈어보려고 급히 살라나무 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이 가시는 마지막 순간을 번거롭게 해드리기를 원치 않아서 친견 기회를 좀처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들 간에 오고 가는 얘기를 등 너머로 들으신 세존께서는 수밧다가 순수한 구도심에 차있으며, 몇 마디만 일러 주어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바로 아시고는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들여보내라고 이르셨다.
 

수밧다의 의문은 다른 여러 사상유파의 지도자들, 즉 뿌라나 까사빠, 니간타 나따뿌따 등등이 과연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세존께서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어떤 교법과 계율이든지 그 안에 팔정도가 없으면 어떤 성위(聖位)도, 그것이 첫 번째 성위이든 두 번째 성위이든 또는 세 번째이든, 네 번째이든 그 어느 단계의 성위도 바르게 얻은 사람이 있을 수 없노라. 수밧다여! 어떤 교법이나 계율이라도 팔정도가 거기에 있으면 그 교단에는 첫 번째 단계의 진정한 성인도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단계86)의 진정한 성인도 반드시 있는 법이니라. 나의 이 교법과 계율에는 팔정도가 있으며, 또한 그 모든 단계의 성위를 각기 바르게 이룬 사람들이 있느니라.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에는 팔정도도 진정한 성인도 찾아볼 수 없느니라. 수밧다여! 이 교단에서는 수행자들이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느니라. 그 덕으로 이 세상에 아라한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니라.”87)
 

세존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자 수밧다는 신심이 우러나 부처님과 법과 승단에 귀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승단에 들어오기를 원하였고,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받아들이도록 이르셨다. 이리하여 수밧다는 부처님께서 손수 귀의시킨 마지막 개종자이자,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애써 노력한 결과 오래지 않아서 최고의 성위인 아라한위를 성취했다.

 

마지막 정경88)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스승 없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느니라.”
 

“내가 간 후에는 내가 설한 법과 내가 정한 율을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비구들이여! 어떤 형제들은 마음속에 붓다나, 법이나, 길(magga)이나, 길을 나아가는 방법(paṭipadā)에 대해서 의심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마음 놓고 물어라. 다음에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즉 ‘그때는 스승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세존께 여쭙지 못하고 말았다’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잠잠히 침묵을 지켰다. 두 번, 세 번,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고 비구들 역시 똑같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저는 실로 여기 모인 비구들 가운데 붓다와 법과 길과 길을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의혹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믿습니다.”
 

세존께서도 아난다 존자의 말을 승인하시면서, 덧붙여서 여기 모인 모든 대중은 수행이 가장 뒤쳐진 사람까지도 반드시 구경의 해탈을 장차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는 잠시 후 세존께서는 지금도 또 미래에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어 하는 이 대중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셨다.
 

“그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간곡히 이르노라.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壞法].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Vayadhammā saṃ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이것이 부처님의 유훈
(遺訓)이셨다.89)   

그러고서 부처님께서는 아홉 단계의 선에 차례대로 드셨다. 먼저 네 가지 색계선에, 다음에는 네 가지 무색계선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상멸처정(受想滅處定)에 드신 것이다. 그런 다음 거꾸로 이 모든 단계를 거슬러 내려와 초선에 이르신 다음 다시 제4선에까지 올라가셨다. 평온에 기인하여 정념(正念)의 청정을 이룸을 특징으로 하는 제4선에 다시 드시자 거기서 곧바로 반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마침내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90)을 실현하신 것이다.
 

역사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부처님처럼 카스트, 계급, 또는 신앙에 관계없이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신 분은 달리 또 찾아볼 수 없다. 깨달은 그 시간부터 생을 마친 그 순간까지 그 분은 인류를 향상․성숙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온 힘을 쏟으셨다. 그분은 공익을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춘 적이 없었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본 적이 없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항상 건강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또렷이 깨어 있어 활기에 넘치셨다.
 

이제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지 2,500여년이 지났지만 그 분의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는 인류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순수한 그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는 매일같이 꽃이 숲을 이루며 바쳐지고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나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를 거듭 외우고 있다. 그 분의 위대함은 약한 불빛을 흡수해 버리는 태양과도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명을 발하고 있고, 그 분의 법은 여전히 세파에 지친 순례자들을 열반의 안전과 평화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삐야다시 스님은 스리랑카 태생으로 출가 전에 날란다 대학과 스리랑카 대학에서 수학했다. 20세에 득도, 스리랑카의 저명한 고승인 와지라냐나 상가 나야까(Vajiranyana Saṅgha Nayaka) 스님 밑에서 불법을 닦았음.

  현재는 스리랑카 지도급 승려로서 힘있는 설법과 라디오 전파를 통한 포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서양을 널리 여행하면서 불법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여러 국제 종교회의와 문화적인 모임에 남방불교 대표자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스리랑카 불자출판협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 BPS) 간행시리즈의 싱할리어 본(本) 출판물 「Dams-ak」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저서안내

The Book of Protection:Parittā Recitals in English Translation (BPS)

The Seven Factors of Enlightenment (Wh. 1)

Dependent Origination (Wh. 15)

The Psychological Aspect of Buddhism (Wh. 179)

Buddhism : A Living Message (BPS)

Four Sacred Shrines (BL. B 8)

The Threefold Division of the Noble Eightfold Path (BL. B 32)

Buddhist Observance and Practices (BL. B 48)

The Story of Mahinda, Sanghamitta and Sri Maha Bodhi (BL. B 57)


1) 쟈와할랄 네루, 『인도의 발견』 켈커타 판 143쪽. ∥원문으로∥

 2) 같은 책 137쪽.  ∥원문으로∥

 

3)〔역주〕리스 데이비즈(Dr. T. W. Rhys Davids) : 영국의 언어학자.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부인과 더불어 빠알리어와 근본불교 연구에 큰 기여를 했음. 특히 빠알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 약자로 P.T.S.)를 창설, 초대 회장직(1881~1922)을 맡아서 빠알리경의 로마자(字) 표기 영역사업을 헌신적으로 전개, 서방세계에 근본 불교를 소개 보급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음. 『장부(Dīgha Nikāya)』의 영역 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특히 빠알리-영어사전(Pali-English Dict, 1921)은 오늘날에도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불후의 대작이다.  ∥원문으로∥

4) 여기에서 종교(religion)라는 말은 흔히 이해되고 있는 서구적인 의  미에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way of life)’이란 뜻으로 씀. ∥원문으로∥
5) 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성) Siddhartha(이름).∥원문으로∥
6)〔역주〕아쇼카 황제 :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영주(英主). 보리수잎․일곱『미래의 종교, 불교󰡕 주해 5) 참조.∥원문으로∥

7)〔역주〕커닝엄(Cunningham, 1814~1893) : 영국 웨스트민트 출생. 인도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림. 원래 엔지니어였으나 1831년 이후 인도 고고학에 전념. 1834~1854년까지 마니칼라, 사르나트, 비슬라 등의 유적을 발굴. 유적지 발굴을 통하여 불교역사의 재발견을 이룸. 만년에는 화폐학연구에 전념하다가 런던에서 죽음. 논문은「캐시미르 사원에 대한 일련의 저작」외 24권의 고고학 보고서가 있으며 인도역사가들에게는 귀중한 문헌이다. ∥원문으로∥

8) 에드윈 아놀드, 『아시아의 빛』 보스톤 1914. ∥원문으로∥

9) 같은 책. ∥원문으로∥

10)〔역주〕부처님의 아들 이름인 라훌라(Rāhula)는 빠알리어로 장애라는 뜻이다.∥원문으로∥

11)『증지부』 i권, 38경, 146쪽. ∥원문으로∥

12) 보살[菩薩  Bodhisatta, 산스크리트어로는 Bodhisattva) : 원시경전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의 부처님을 부를 때만 보살이란 말을 쓴다. 깨달음이라는 이상, 또는 사성제에 관한 지혜[보리 Bodhi]를 추구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깨달음[正等覺  sammāsambodhi]이란 큰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구도자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보살은 열 가지 수행의 극치[십바라밀(pārami : 완성)]를 닦는다. 이 십바라밀은 성불을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서 자비에서 비롯되고 시종 이해성 있는 예지나 아니면 민첩한 영민성이라는 그 기본 색조를 띠고 있으며 갈애와 삿된 견해 그리고 자만에서 벗어나 있는 극히 높은 수준의 자질로서,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보시(布施 dāna), 지계(持戒 sīla), 출리(出離 nekkhamma), 지혜(智慧 paρρā), 정진(精進 viriya), 인욕(忍辱 khanti), 진실(眞實 sacca), 결의(決意 adhiṭṭhāna), 자애(慈愛 mettā), 평온(平穩 upekkhā). 이상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그것과는 다름. ∥원문으로∥

13) 자세한 내용은『중부』36경 참조. ∥원문으로∥

14) 이 나무는 후에 보리수 즉 깨달음의 나무, 또는 지혜의 나무라 불리게 됨. ∥원문으로∥

15)〔역주〕출입식념 : 정신 집중과 4선(四禪)에 도달하는 훈련 중 가   장 중요한 것의 하나. 「염처경」(『중부』10경, 『장부』22경)과     「출입식념경」(『중부』118경) 등 참조.∥원문으로∥

16)『중부』36경, 「마하 사짜까 경」.∥원문으로∥

17) 다른 경에서는 네 번째 번뇌로, 그릇된 견해[見漏 diṭṭhāsava]를 추가하고 있는 경우도 있음. ∥원문으로∥

18) 더 이상 심신(心身)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말. 다시 태어남, 즉 윤회가 끝났다는 뜻. ∥원문으로∥

19)『중부』36경. ∥원문으로∥

20)〔역주〕『법구경』153, 154게. 이 두 게송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깨친 감회를 읊으신 것이다. 여기서 집은 몸을 의미하고, 집짓는 이는 갈애를, 서까래는 때[坵 kilesa]를, 마룻대는 무지[無明]를 의미한다.∥원문으로∥

21)〔역주〕오월 보름날 : 남방 전통에서는 부처님의 탄신일과 성도일 및 열반일을 오월 보름에 지키고 있다. ∥원문으로∥

22) 여섯 감수계[六入] : 다섯 개의 육체적 감각기관 즉 눈․귀․코․혀․몸과 의식을 말함.  ∥원문으로∥

23)『감흥어(Udāna)』1장, 삐야다시 스님의『연기법(Dependent Origination)』(The Wheel No.15, BPS 간행) 참조. ∥원문으로∥

24) 이때는 승단이 아직 구성되지 않았었음. ∥원문으로∥

25) 율장『대품(大品)』∥원문으로∥

26)『중부』 26경. ∥원문으로∥

27)〔역주〕불안(佛眼 Buddhacakkhu) : 부처가 갖추게 되는 완전한 직관 능력. 오안(五眼)의 하나. 남방전통에서 말하는 오안은 다음과 같다. 1. 육안, 2. 천안, 3. 혜안, 4. 불안, 5. 보안(普眼 samanta cakkhu-두루 빠짐없이 살피는 눈) ∥원문으로∥

28)『중부』26경, 「성구경(聖求經)」 169쪽. ∥원문으로∥

29) 이시빠따나(Isipatana) : 선인들이 잘 모이는 곳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사르나트. ∥원문으로∥

30) 사성제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저자의『부처님의 옛 길(The Buddha's Ancient Path)』참조.  보다 자세한 설명은 냐나몰리 스님의『세 주요 법문(Three Cardinal Discourses)』(The Wheel No.17 BPS 발행)과 프란시스 스토리의 『사성제』(법륜․열다섯, 고요한소리 발행, The Wheel No. 34, 35 BPS 발행)’, 냐나띨로까 스님의 『붓다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김재성 역, 고요한소리 발행) 참조.∥원문으로∥

31)『상응부』V권,「전법륜경」420쪽. ∥원문으로∥

32)『상응부』V권, 437쪽. ∥원문으로∥

33)『중부』22경, 「뱀의 비유의 경」140쪽. ∥원문으로∥

34)『숫따니빠따』558게, 『중부』92경, 율장 i 245, 『장노게송집』828게. ∥원문으로∥

35) 아쇼카 황제는 이 성스러운 지점을 순례하고서 많은 건조물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기운찬 사자 네 마리를 새긴 대접받침[柱枓]의 석주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대접받침은 법륜을 떠받치고 있어 불법의 흥륭을 상징하는데, 지금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오늘날 인도의 공식적 국가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 날을 기리는 법륜제(法輪祭)가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봉행되고 있다. 쟈와할랄 네루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베나레스 근처 사르나트에서 나는 부처님이 첫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에 나오는 말씀들이 25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곧장 나의 귀에 먼 메아리처럼 다가오는 것 같았다. 명문에 새겨진 아쇼카의 석주는 그 장엄한 언어로 나에게 한 인간, 황제였지만 황제 이상으로 위대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도의 발견』 44쪽에서)∥원문으로∥

36) 우기(vassa) : 인도에서는 7월에서 10월까지 석달 동안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계속 와서 우기를 이룸. 인도의 계절을 대강 세 절기로 구별하여 11월~2월은 건량기(乾凉期), 3월~6월은 건서기(乾暑期), 7월~10월은 습서기(濕暑期) 즉 우기라 부름. 와사(vassa)는 또한 우안거(雨安居)를 뜻함. ∥원문으로∥

37) 율장『대품󰡕의「건도부(楗度部)」 ∥원문으로∥

38) 현재 베나레스 북동 120마일 떨어진 우따라 쁘라데쉬 지방. 당시 말라인들의 말라국은 둘로 나뉘어, 꾸시나라는 그중 한쪽의 수도였다. ∥원문으로∥

39) 인도의 그 많은 리쉬(예지자) 중 최대의 리쉬이신 부처님이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셔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사슴동산(녹야원)의 나무 아래에서 법륜을 굴리셨으며, 마지막으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점을 살펴볼 때 누구나 특별한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부처님은 그 생애의 대부분을 숲과 마을의 공지에서 보내셨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셨던 그 보리수의 남쪽 가지를 아쇼카 황제의 딸이며 아라한인 장로니(長老尼) 상가미따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라에 갖다 심어 지금도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이 보리수가 기록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원문으로∥

40)〔역주〕예류과(預流果 sotāpattiphala) : 최초의 성과(聖果). 유신견,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불법에 대한 의심의 세 족쇄를 끊었기에 다시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일곱생 내에는 성불하게 된다.∥원문으로∥

41)〔역주〕제따와나 정사 : 기수급고독원에 지은 절. 원래 제타 태자의 동산이었으나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이 땅을 사서 부처님께 바치고, 태자는 또 그 숲을 바쳤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기수(제따의 숲) 급고독원 (급고독의 동산 즉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이라 함. ∥원문으로∥

42)〔역주〕쌍신변(雙身變) : 부처님이 외도를 항복받기 위해 보이신 신통의 하나. 일련의 대우(對偶)신통으로 상체에서 물줄기를 내뿜는 동시에 하체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또 그 반대도 현출하며 한쪽으로는 불을 다른 쪽으로는 물을 내뿜기도 하고, 전신의 구멍에서 6가지 광채를 발해 위로는 범천을, 아래로는 철위산 끝까지 비추는 등 부처만이 보일 수 있는 신통.  ∥원문으로∥

43)〔역주〕남방전통에 의하면 부처님이 성불하신지 7년째 되던 해에 외도들의 도전에 응해 사와티에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쌍신변을 보이신 후 그 끝맺음으로 옛 부처님들의 선례에 따라 단 세 걸음에 삼십삼천에 오르셨다. 거기서 그 해의 우기가 다할 때까지 머물면서 생모 마하마야를 위해 천신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함. 다른 전거에 의하면 마하마야가 다시 태어난 곳은 도솔천이며 이름은 마야천자(Mayadevaputta)로 법문을 듣기 위해 삼십삼천에 왔었다고 한다.  ∥원문으로∥

44) 이 법문의 전문(全文)은 『증지부』 iv, 354와 『감흥어』34쪽에 나온다. 『법구경』주석서 i 287과 『장노게송집』66 게송에도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원래 메기야 존자는 석가족의 왕족출신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와 관련있는 『법구경』의 33, 34 게송은 다음과 같다. ∥원문으로∥

    “안정되지 않고 변덕부리는 마음은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바룬다.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

    “물에서 잡혀나와

     땅위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이 마음은 몸부림친다.

     (따라서)‘마라의 영역’(열정)은 떠나버려야 한다.”

45)『법구경』 147게.∥원문으로∥

46)〔역주〕죽음의 염[死隨念  Maranānussati] : 죽음의 위험이 언제나 우리를 넘보고 있음을 상기하거나, 그 죽음의 공포에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숙고하며, 혹은 남들의 죽음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되돌아보는 등의 공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공부를 하면 죽음을 맞아서도 당황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으며, 살아서 불사의 경지를 못 이루면, 죽어서 좋은 내생을 맞는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주인공의 수명을 내다보시고 죽음의 염 공부를 지시해 주신 것임.

  * 소녀와 부처님간의 문답은 다음과 같다.

    1. 어디서 왔느냐. 모르옵니다.

    2. 어디로 가느냐. 모르옵니다.

    3. 모르느냐. 압니다.

    4. 아느냐. 모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소녀가 불경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녀에게 설명토록 시켰다. 1.은 전생을 묻는 것으로 알고 한 대답이며, 2.는 내생을 묻는 것으로, 3.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는 질문으로, 4.는 그 때가 언제냐는 질문으로 알고 드린 대답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녀가 죽을 시간은 바로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직후였다. ∥원문으로∥

47)『법구경』174게. ∥원문으로∥
48) 이 흥미있는 이야기의 질문과 대답에 관한 서술은『법구경』주석서 3권 170쪽 또는 벌링겜 지음『불교이야기(Buddhist Legends)』제3부 14쪽을 참조. 이 책 56쪽의 역주 46) 참조. ∥원문으로∥

49)〔역주〕위사카(Visākhā) : 앙가국의 장자집에 태어나 사위성의 장자 녹자에게 시집간 위사까가 180만금을 내고 목갈라나 존자의 감독 하에 지어 승단에 바친 정사. 남편 녹자가 아내를 칭찬하여 어머님과 같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녹자모라 불렀다. ∥원문으로∥

50) 십바라밀 : 이 책의 16쪽의 주 12) 참조.∥원문으로∥
51)『중부』 26경, 「성구경(聖求經)」171쪽.  ∥원문으로∥

52) 아라한이라는 말은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우빠까에게 친히 밝히셨듯이 세상에서 최초의 아라한이시다.(이 책의 34쪽 참조)  ∥원문으로∥

53)『상응부』 iii, 66쪽.  ∥원문으로∥

54)『장부』16경, 「대반열반경」100쪽.  ∥원문으로∥

55)『증지부』I권 65경, 188쪽. 그 밖에도 『증지부』Ⅰ권 66경, 『증지부』Ⅱ권, 193경 「밧디야 경」 참조. 이 중요한 경의 완역은 소마 스님 영역, 『깔라마(Kālāma) 경』(The Wheel, No.8 BPS,  법륜․둘『구도의 마음, 자유』)을 참조.∥원문으로∥
56)『중부』38경, 265쪽.  ∥원문으로∥

57)『법구경』276게.  ∥원문으로∥

58)『장부』16경, 100쪽.  ∥원문으로∥

59)〔역주〕가야 강 : 부처님 당시에 대표적인 성수로 손꼽히던 강.  ∥원문으로∥

60)『중부』7경, 「와투빠마 경」39쪽. (The Wheel No.61, 62에 번역되어 있음.)∥원문으로∥

61)〔역주〕카스트(caste) : 인도의 독특한 봉쇄적 신분계급. 카스트라는 용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castus(純血)와 포르투갈어의 casta(血統)로부터 만들어진 말이라 함. 인도에서는 베다시대 이래로 출생에 의해 사회적 신분과 직업 등 일체를 카스트에 따라 구분하여 규정함으로써 특이한 사회계급제도를 구성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브라흐마나(바라문 : 사제), 찰제리 : 왕후, 무사), 바이사(비사 : 농공상 서민), 수드라(수타라 : 노예)의 4성의 구별이 있었지만, 점차로 가지를 쳐서 부(副)카스트가 생기고 잡종계급도 생겨 종교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고 종족, 종교, 직업 등에 따라서도 가지를 쳐서 현재에는 그 세분된 수가 2천 내지 3천에 이른다고 한다. 다른 카스트 사이에는 식사와 결혼이 금지되고, 극히 복잡하고 엄격한 풍습과 계율을 지킨다. 현대에는 바라문 계급은 그 특성을 고집하고, 크샤트리아는 서북 인도의 라지푸트족 및 지주계급 등에 그 모습을 전하고, 바이샤는 일반 상업자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또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최하층 계급으로서 불가촉천민(파리아)이 있는 바, 인도 독립 후로는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아 이 불가촉천민의 출신자로서 지도적 역할을 떠맡고 있는 사람도 많다. 카스트제도는 현재 인도공화국의 헌법에 의해 부정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아직도 실제문제로 남아 있어 인도민족의 근대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으며, 이 카스트 문제의 해결이 인도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번영의 관건이 되어 있다. (일본 나까무라 하지메 지음, 『불교어 대사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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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숫따니빠따』455, 456 게송, 챠머(Chalmer)의 영역(英譯)(하바드 오리엔탈 시리즈). ∥원문으로∥

63)『숫따니빠따』, 「와살라 경」 142 게송, 60쪽. (〔역주〕빠알리어로 와살라는 천민이라는 뜻임) ∥원문으로∥

64) 말랄라세케라․쟈야띨레케 공저, 『불교와 인종문제』(유네스코, 1959) ∥원문으로∥

65)『쟈따까』 485, 「짠다낀나라 쟈따까」∥원문으로∥

66) 율장 『대품』. 승려가 되는 절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삐야다시 스님과 J. F 딕슨의 『테라와다 불교의 수계절차(The Ordination In Theravada Buddhism)』(The Wheel No.56)을 참조.  ∥원문으로∥

67)〔역주〕5부경 : 경장(經藏 sutta pitaka)을 이루는 다섯 니까야[五部 Paρca Nikāya) : 장부(長部 Dīgha Nikāya), 중부(中部 Majjhima Nikāya), 상응부(相應部 Samyutta Nikāya), 증지부(增支部  Anguttara Nikāya), 소부(小部 Khuddaka Nikāya) 자세한 것은 보리수잎․일곱, 주 2) 참조.  ∥원문으로∥

68)『중부』 62경, 424~425쪽. The Wheel, No.33에 완역되어 있음.   ∥원문으로∥

69)〔역주〕자애[慈]의 원어 mettā는 친구 사이의 우정(friendship)을 의미하며, 친구의 우정과 같은, 동등한 입장의 평등한 사랑을 말함. ∥원문으로∥

70) 사무량심 : 보리수잎․다섯, 『거룩한 마음가짐 ― 사무량심』, The Wheel, No.6(BPS) 참조.∥원문으로∥

71)〔역주〕무상상(無常想 anicca saρρā) :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상념하는 것.  ∥원문으로∥

72)『상응부』  ∥원문으로∥

73)『장로니게』 주석서. (영역『장로니게송집 (Psalms Of The Sisters)』107쪽 참조.)  ∥원문으로∥

74) 알렉산더 커닝엄 장군은 그의 고고학적 보고서(1862~1863)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기원정사의 북동쪽에 부처님께서 병든 비구의 손과 발을 닦아 주었다는 지점에 탑이 세워져 있었다. (……) 기원정사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이 탑의 유적이 지금도 벽 돌더미 가운데 남아있다.” 커닝엄 장군이 만든 사와티(현재 사헤트-마헤트) 지도에는 이 탑의 위치가 H로 표시되어 있다.『인도의 고고학적 개관(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심라 1871) 341쪽 참조.  ∥원문으로∥

75) 율장 『대품』. 또한 영역(PTS판)『계율의 서 (Book Of Discipline)』 Part IV, 431쪽 참조.∥원문으로∥

76)『숫따니빠따』,「자(慈)경」149 게송. 챠머의 영역.  ∥원문으로∥

77) 아놀드, 『아시아의 빛』.  ∥원문으로∥

78) 이것들을 여덟가지 세간법(Attha loka-dhamma)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능히 흔든다 하여 여덟가지 바람[八風 : 利, 衰, 毁, 譽, 稱, 譏, 苦, 樂]이라고도 부른다.  ∥원문으로∥

79)『상응부』iii, 138쪽  ∥원문으로∥

80)『장부』ⅰ, 1경, 2~3쪽.「범동경」(梵動經 또는 梵網經 Brahmajāla Sutta)∥원문으로∥

81)『법구경』320게.  ∥원문으로∥

82)『법구경』주석서 1권, 147쪽.  ∥원문으로∥

83)『장부』16경, 「대반열반경」. The Wheel No.67~69에 『부처님의 마지막 나날들(Last Days Of The Buddha)』로 영역되고 있음.  ∥원문으로∥

84)〔역주〕무상정(無相定 Animitta samādhi) : 감관의 제어를 이룬 사람이 대상[六境]의 일반적 외형을 취하지 않고 일체 차별상을 여읨으로써 누리는 삼매.  ∥원문으로∥

85)〔역주〕교법과 계율 : 교법(敎法 Dhamma)과 계율(戒律 Vinaya)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전 체계를 가리키며, 부처님 당시의 불교를 뜻한다. 법은 가르침 즉 경을, 계율은 수행자에게 권고하신 여러 가지 규범을 가리킨다.∥원문으로∥

86) 이 네 단계는 예류(預流 sotāpatti : 흐름에 들어섬), 일래(一來 또는 一還 sakadāgāmī : 한번 돌아옴), 불환(不還 anāgāmī : 돌아오지 않음), 아라한(阿羅漢, 應供 arahatta : 성위의 마지막 단계)을 가리킴. 아라한위는 모든 속박을 끊어 버리고 번뇌를 근절시킨 경지임.  ∥원문으로∥


87) 팔정도에 대해서 T. W. 리스 데이비즈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세상의 대 종교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살펴 보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부처님의 팔정도를 능가하는 포괄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나는 팔정도에 따라 나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매우 보람스럽다.”  ∥원문으로∥


88) 따옴표 안의 구절들은 『장부』ⅱ권, 「대반열반경」에서 뽑아서 약간 바꾸었음.   ∥원문으로∥


89)〔역주〕『장부』 ⅱ권, 「대반열반경」156쪽.  ∥원문으로∥


90)〔역주〕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anupādisesa parinibbāna) :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구별되는 말. 유여의열반은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모든 번뇌를 여의어 열반은 성취했으나 육신을 아직 여의지 않은 데 대하여, 무여의열반은 육신마저 끊어진 자리인 완전한 열반을 말함.∥원문으로∥

 

 

Source : http://www.calmvoi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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