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jhima Nikāya 38

Mahātaṇhāsankhaya Sutta

갈애의 부숨에 관한 긴 설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에 있는 제타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한 가지 유해한 견해가 어부의 아들인 사띠라는 비구에게 다음과 같이 떠올랐다.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재생의 연속을 통해서­ 방황하는 것은 동일한 의식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몇 사람의 비구들이 이를 듣고, 사띠 비구에게 가서­, 그에게 물었다. “벗, 사띠여, 이와 같은 유해한 견해가 그대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제가 이해하기로는, 재생의 연속을 통해서­ 방황하는 것은, 동일한 의식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비구들은 사띠 비구를 유해한 견해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이와 같이 압박하고, 질문하고 추궁하였다. “벗, 사띠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잘못 대변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잘못 대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와 같이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식은 의존해서­ 일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며, 조건 없이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비구들은 사띠 비구를 이렇게 압박하고 질문하고 추궁하였지만,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여전히 그 유해한 견해에 완고하게 집착하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그 비구들은 그로부터 그 유해한 견해를 떼어 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존께 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편에 앉아서­, 그 동안 일어­ 경위를 말씀드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존귀한 분이시여, 저희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이 유해한 견해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어떤 한 비구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나의 이름으로 스승이 그를 부른다고 전하라.”

“알았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는 대답하고, 사띠 비구에게 가서­, 그에게 말했다. “벗, 사띠여, 스승님이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았습니다. 벗이여.” 그는 대답하고, 세존께로 가서­ 절을 올린 후에, 한 편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에게 질문하셨다. “사띠여, 다음과 같은 유해한 견해가 그대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사실인가?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내가 이해하기로는, 재생의 연속을 통해서­ 방황하는 것은, 동일한 의식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세존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제가 이해하기로는, 재생의 연속을 통해서­ 방황하는 것은 동일한 의식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띠여, 그 의식이란 무엇인가?”

“존귀한 분이시여, 의식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에서­ 선업과 악업의 결과를 경험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잘못 배운 자여! 내가 누구에게 담마를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들었단 말인가? 잘못 배운 자여, 의식은 의존해서­ 일어­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설하지 않았던가? 조건 없이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 잘못 배운 자는, 잘못 이해함으로써, 우리를 잘못 대변하고, 자신을 해치고, 많은 해악을 쌓았다. 따라서­ 이것은 오랫동안 그대를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부의 아들, 이 사띠 비구가, 담마와 계율에 조그만 지혜의 불꽃이라도 피운 적이 있었던가?”

“존귀한 분이시여, 어떻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존귀한 분이시여,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말없이, 낙담하여, 어깨가 처지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고, 대꾸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잘못 배운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유해한 견해로써 알려질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비구들에게 질문하겠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내가 가르친 담마를, 어부의 아들, 이 사띠 비구가 잘못 이해하여 우리를 잘못 대변하고, 자신을 해치고, 많은 해악을 쌓은 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많은 설법을 통해서­, 세존께서­는 의식이 의존해서­ 일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건 없이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내가 가르친 담마를 그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는 의식이 의존해서­ 일어­다고 설했다. 조건 없이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부의 아들, 이 사띠 비구는 그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잘못 대변하고, 자신을 해치고, 많은 해악을 쌓았다. 그래서­ 이것은 이 잘못 배운 자를 오랫동안 해로움과 괴로움으로 이끌 것이다.

의식의 조건성

비구들이여, 의식은 그것이 의존해서­ 일어나는 특별한 조건에 따라서­ 알려진다. 의식이 눈과 형상에 의지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안식 (눈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기고, 의식이 귀와 소리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이식 (귀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기고, 의식이 코와 냄새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비식 (코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기고, 의식이 혀와 맛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설식 (혀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기고, 의식이 몸과 접촉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신식 (몸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기고, 의식이 마음과 마음의 대상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심식 (마음의 알음알이) 이라고 여긴다. 마치 불이, 그것이 의존해서­ 불타는 특별한 조건에 따라서­ 알려지듯이, 불이 통나무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통나무 불이라고 여기고, 불이 나뭇단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나뭇단 불이라고 여기고, 불이 풀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풀 불이라고 여기고, 불이 소똥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소똥 불이라고 여기고, 불이 왕겨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왕겨불이라고 여기고, 불이 쓰레기에 의존해서­ 불탈 때, 그것을 쓰레기 불이라고 여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의식도 그것이 의존해서­ 일어나는 특별한 조건에 의해서­ 알려진다. 의식이 눈과 형상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안식이라고 여기고 … 의식이 마음과 마음의 대상에 의존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심식이라고 여긴다.

존재에 관한 일반적인 설문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것이 생겨­ 것’ 이라고 보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그것의 기원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해서­ 함께 일어­다.’ 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그 자양분의 소멸로써, 존재하게 된 것도 소멸하게 된다.’ 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것이 생겨­ 것인가?’ 하고 확신하지 못할 때, 의심이 일어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것의 기원은 그것을 자양분으로 해서­ 함께 일어나는가?’ 하고 확신하지 못할 때, 의심이 일어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 자양분의 소멸과 함께, 생겨­ 것도 소멸하게 되는가?’ 하고 확신하지 못할 때, 의심이 일어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올바른 지혜로써 ‘이것은 생겨­ 것이다’ 하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의심이 버려지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올바른 지혜로써 ‘그것의 기원은 그것을 자양분으로 함께 일어­다.’ 하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의심이 버려지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올바른 지혜로써 ‘그 자양분의 소멸과 함께, 생겨­ 것도 소멸하게 된다.’ 하고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의심이 버려지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여기서­ ‘이것은 생겨­ 것이다’ 하고 이와 같이,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여기에서­ ‘그것의 기원은 그것을 자양분으로 함께 일어­다.’ 하고 이와 같이,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여기에서­ ‘그 자양분의 소멸과 함께, 생겨­ 것도 소멸하게 된다.’ 하고 이와 같이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올바른 지혜로 ‘이것은 생겨­ 것이다’ 하고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올바른 지혜로 ‘그것의 기원은 그것을 자양분으로 함께 일어­다.’ 하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올바른 지혜로써 ‘그 자양분의 소멸과 함께, 생겨­ 것도 소멸하게 된다.’ 하고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견해가 청정하고 밝은 것이지만, 만약 그대들이 그것에 집착하고, 신봉하고, 보배처럼 아끼고, 소유물로 다룬다면, 그대들은 담마가 마치 뗏목과도 같이, 그것이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으로 있는 것이지, 붙잡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졌다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견해가 청정하고 밝은 것이지만, 그대들이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신봉하지 않고, 보배처럼 아끼지 않고, 소유물로써 다루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담마가 마치 뗏목과도 같이, 그것이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으로 있는 것이지, 붙잡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졌다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자양분과 연기—의존해서­ 일어남

“비구들이여, 이미 생겨난 존재들을 유지하고 이제 막 생겨나려고 하는 존재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 네 가지 종류의 자양분이 있다. 그 네 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자양분으로서­의 물질적인 음식, 두 번째 접촉, 세 번째 정신적인 의지, 네 번째 의식이다.

이제,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종류의 자양분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을 그 원인으로 하고, 무엇으로부터 태어나고 만들어지는가? 이 네 가지 종류의 자양분은 갈애를 근원으로 하고, 갈애를 그 원인으로 하고, 그것들은 갈애로부터 태어나고 만들어진다. 그러면 이 갈애는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갈애는 느낌을 기원으로 하고 … 그러면 이 느낌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느낌은 접촉을 근원으로 한다 … 그러면 이 접촉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접촉은 육입 (여섯 겹의 토대) 을 근원으로 한다 … 그러면 이 육입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육입은 명색 (정신성과 물질성) 을 근원으로 한다 … 그러면 이 명색을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명색은 의식을 근원으로 한다 … 그러면 이 의식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의식은 형성을 그 근원으로 한다 … 그러면 이 형성은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으로부터 태어나고 만들어지는가? 형성은 무명을 그 근원으로 하고, 무명을 그들의 원인으로 한다. 그것들은 무명으로부터 태어나고 만들어진다.

일어남에 관한 순관

그래서­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 (名色, 정신성과 물질성),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 (六入, 여섯 겹의 토대), 육입을 조건으로 접촉,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 집착을 조건으로 유 (有, 되어감), 유를 조건으로 태어남,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와 절망이 생겨­다. 이러한 것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원인이다.

일어남에 관한 역순의 설문

‘태어남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

“‘유 (有, 되어감) 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태어남은 유를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어남은 유를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집착을 조건으로 유가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유는 집착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는 집착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착을 조건으로 유가 있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집착은 갈애를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이 경우에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집착은 갈애를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여, 갈애는 느낌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애는 느낌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육입 (六入, 여섯 겹의 토대) 을 조건으로 접촉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접촉은 육입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접촉은 육입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육입을 조건으로 해서­ 접촉이 있다.’”

“‘명색 (名色, 정신성과 물질성) 을 조건으로 해서­ 육입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육입은 명색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입은 명색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이 경우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이 있다.’”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명색은 의식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명색은 의식은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의식은 형성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형성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다.’”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형성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형성은 무명을 조건으로 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무명을 조건으로 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있다.’”

일어남에 관한 개관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그대들은 이와 같이 말하고, 나도 또한 그와 같이 말한다.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일어남으로써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 육입을 조건으로 접촉,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 집착을 조건으로 유, 유를 조건으로 태어남,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생겨­다. 이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원인이다.

소멸에 관한 순관

그러나 무명의 남김 없는 사라짐과 소멸로써 형성의 소멸이 오고, 형성의 소멸로 의식의 소멸, 의식의 소멸로 명색의 소멸, 명색의 소멸로 육입의 소멸, 육입의 소멸로 접촉의 소멸, 접촉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 느낌의 소멸로 갈애의 소멸, 갈애의 소멸로 집착의 소멸, 집착의 소멸로 유의 소멸, 유의 소멸로 태어남의 소멸, 태어남의 소멸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소멸한다. 이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소멸이다.

소멸에 관한 역순의 설문

‘태어남의 소멸로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의 소멸로 소멸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늙음과 죽음은 태어남의 소멸로 소멸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태어남의 소멸로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 있다.’”

“‘유의 소멸로 태어남의 소멸’ … ‘집착의 소멸로 유의 소멸’ … ‘갈애의 소멸로 집착의 소멸’ … ‘느낌의 소멸로 갈애의 소멸’ … ‘접촉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 … ‘육입 (여섯 겹의 토대) 의 소멸로 접촉의 소멸’ … ‘명색 (정신성과 물질성) 의 소멸로 육입의 소멸’ … ‘의식의 소멸로 명색의 소멸’ … ‘형성의 소멸로 의식의 소멸’ … ‘무명의 소멸로 형성의 소멸이 있다’ 고 설해졌다. 이제 비구들이여, 형성은 무명의 소멸과 함께 소멸하는가, 아닌가, 혹은 그대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무명의 소멸과 함께 소멸합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명의 소멸로 형성의 소멸이 있다.’”

소멸에 관한 개관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그대들이 그와 같이 말하고, 나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것이 생기지 않고, 이것의 소멸로 저것도 소멸한다.’ 즉, 무명의 소멸로 형성의 소멸이 오고, 형성의 소멸로 의식의 소멸, 의식의 소멸로 명색의 소멸, 명색의 소멸로 육입의 소멸, 육입의 소멸로 접촉의 소멸, 접촉의 소멸로 느낌의 소멸, 느낌의 소멸로 갈애의 소멸, 갈애의 소멸로 집착의 소멸, 집착의 소멸로 유의 소멸, 유의 소멸로 태어남의 소멸, 태어남의 소멸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소멸한다. 이것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소멸이다.

개인적인 지혜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과거로 달려갈 것인가. ‘우리는 과거에 존재했던가? 우리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과거에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과거에 어떠했던가? 우리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이 되었던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이와 같이 미래로 달려갈 것인가. ‘우리는 미래에 존재할 것인가? 우리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미래에 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는 미래에 어떠할 것인가? 우리는 미래에 무엇이 되었다가, 또 무엇이 될 것인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이제 그대들은 이와 같이 현재에 관해 내심으로 당혹해 할 것인가. ‘내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존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것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이와 같이 말할 것인가? ‘그 스승은 우리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우리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말한다.’

”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이와 같이 말할 것인가? ‘그 사문이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그 사문이 시키는데 따라 그와 같이 말한다.”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또 다른 스승을 인정할 것인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이렇게 알고 보면서­도, 그대들은 의례 의식과 떠들썩한 토론, 평범한 사문들과 바라문들의 상스러운 표상들로 돌아가서­, 그것들을 (신성한 삶의) 핵심으로 취할 것인가?”

“아닙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이 스스로 알고보고 이해한 것들만 말하는가?”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나는 그대들에게, 지금 여기서­ 볼 수 있고, 즉시 효과가 있으며, 조사해보라고 초청하고, 앞으로 이끌어주며, 지혜로운 이들 스스로 체험해볼 수 있는 담마를 지도해왔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서­ 이렇게 설해졌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담마는 지금 여기서­ 볼 수 있고, 즉시 효과가 있으며, 조사해보라고 초청하고, 앞으로 이끌어주며, 지혜로운 이들 스스로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존재의 연속: 입태에서­ 성숙

비구들이여, 태아의 입태는 세 가지 것의 결합으로 일어난다. 여기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더라도, 그러나 어머니가 임신철이 아니고, 간닷바 (태어날 존재) 가 없다면, 그 경우에 태아의 입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고, 어머니가 임신철에 있더라도, 간닷바 (태어날 존재) 가 없다면, 이 경우에도 역시 태아의 입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고, 어머니가 임신철에 있고, 간닷바 (태어날 존재) 가 있다면, 이 세 가지 것의 결합을 통해서­ 입태가 이루어진다.

어머니는 태아를 그녀의 자궁 속에 무거운 짐으로서­, 구 개월 혹은 십 개월 동안, 많은 불안 속에 임신한다. 그리고 구 개월 혹은 십 개월 후에, 어머니는 무거운 짐으로서­, 많은 불안 속에 출산하게 된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신의 피로 아기를 키운다. 어머니의 모유는 성인의 계율에서­ 피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라서­ 신체의 기능이 성숙하게 되면, 그 아이는 장­감 쟁기나 자치기, 공중제비 놀이, 장난­감 풍차, 놀이 자, 장­감 활과 화­살 같은 장­감을 가지고 논다.

아이가 자라서­ 신체의 기능이 더욱 성숙하게 되면, 그 청년은 감각적 쾌락의 다섯 끈들이 제공하고, 부여하는 것들을 즐기는데, 눈으로 인지되는 형상, 귀로 인지되는 소리, 코로 인지되는 냄새, 혀로 인지되는 맛, 몸으로 인지되는 촉감의 대상으로서­ 원하고, 바라고, 기분 좋고, 좋아하고, 감각적 욕망과 연결되고,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을 즐긴다.

순환의 계속

눈으로 형상을 보고서­, 그것이 즐거운 것이면 탐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면 싫어한다. 그는 몸의 알아차림을 확립하지 못하고, 한정된 마음으로 머물고, 그러한 악하고 불선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끝나는 마음의 해탈,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좋아하고 거부하는 데 사로잡혀서­, 자신이 느끼는 느낌이 어떤 것이든—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거나—그 사람은 그 느낌을 기뻐하고, 그 느낌을 환영하고, 그 느낌에 매달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안에 기쁨이 일어­다. 이제 느낌을 기뻐하는 것은 집착이 된다. 그의 집착을 조건으로 유 (되어감) 가 〔생기고〕, 유를 조건으로 태어남,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생긴다. 그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원인이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써 맛을 보고 … 몸으로 촉감의 대상과 접촉하고 … 마음으로 마음의 대상을 인지하고, 그 사람은 그것이 즐거운 것이면 탐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면 싫어한다 … 이제 느낌을 기뻐하면 집착이 된다. 그의 집착을 조건으로 유가 〔생기고〕, 유를 조건으로 태어남,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생긴다. 그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원인이다.

순환의 끝내기: 점차적인 훈련

비구들이여, 여기에 완성된 분이시며,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진정한 지혜와 행위에서­ 완벽하신 분, 숭고하신 분, 세상을 아시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비교될 수 없는 지도자, 신과 인간의 스승, 붓다이며, 세존이신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다. 여래는, 이 세상의 신들과 마라들, 범천 (브라흐마) 들과, 이 세대의 사문들과 바라문들, 왕들과 백성들에게, 그 자신이 직접적인 지혜로 깨달은 것을 선언하신다. 여래는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바른 뜻과 어휘를 갖춘 담마를 가르치시고, 또 순전히 완벽하고 순수하며 신성한 삶을 나타내 보이신다.

한 거사나 거사의 아들, 또는 다른 문중에서­ 태어난­ 사람이 그 담마를 듣는다. 그 담마를 듣고, 그 사람은 여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그 믿음을 가지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재가생활은 번잡하고 지저분하다. 출가생활은 넓게 열­려 있다. 집에서­ 살면서­ 윤이 나는 조개처럼 순전히 완벽하고 순수하며 신성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재가생활로부터 집 없는 생활로 나아가면 어떨까?’ 그 후에 작거나 혹은 많은 재산을 버리고, 작거나 혹은 큰 가족들을 버리고, 그 사람은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재가생활로부터 집 없는 생활로 나아간다.

이렇게 나아가서­, 비구의 생활방식과 훈련을 받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그는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절제한다. 몽둥이와 무기를 내려놓고, 양심적으로 자비롭게, 그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연민을 가지고 머문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을 버리고, 그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간다. 주어진 것만을 취하고, 주어진 것만을 기대하며, 훔치지 않음으로써, 그는 깨끗하게 머문다. 결혼생활을 버리고, 육체적인 금욕, 떨어져 살기, 저속한 성교행위로부터 자제하는 것을 지킨다.

거짓말을 버리고, 그는 거짓말을 삼간다. 그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고수하고, 신뢰하고 믿을 수 있으며, 세상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다. 악의적인 말을 버리고, 그는 악의적인 말을 삼간다. 그는 이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간질하기 위하여 그가 들은 것을 다른 곳에서­ 되풀이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이 사람들로부터 이간질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들은 것을 이 사람들에게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헤어진 사람들을 재결합시키는 사람이며,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기뻐하며, 화­합을 기쁘게 해주는 우애의 장려자이며, 화­합을 촉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거친 말을 버리고, 그는 거친 말을 삼간다. 그는 부드럽고, 듣기 즐겁고, 사랑스러워 가슴에 와 닿는 말을 하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잡담을 버리고, 그는 잡담을 삼간다. 그는 때에 맞추어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선한 것에 관해 말하고, 담마와 계율에 관해 말한다. 때에 맞추어, 그는 기록할 만하고, 합리적이고, 온건하고 유익한 말을 한다.

그는 씨앗과 식물을 해치는 것을 삼간다. 그는 밤중이나 적당한 시간이 아닌 때 먹는 것을 삼가고, 하루에 한번 식사하는 것을 실천한다. 그는 춤추기, 노래하기, 음악, 연극 보기를 삼간다. 그는 화­환을 두르기, 향수로 멋 부리기, 연고로 자신을 꾸미기를 삼간다. 그는 높고 큰 의자를 삼간다. 그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정제하지 않은 곡물을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조리하지 않은 육류고기를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여자와 소녀를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남녀 노예를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가금류와 돼지를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코끼리와 소, 말과 암말들을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논밭과 토지를 받는 것을 삼간다. 그는 심부름하기와 전갈 (메시지) 을 전하는 것을 삼간다. 그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삼간다. 그는 거짓 무게달기, 금속 속이기, 계량 속이기를 삼간다. 그는 뇌물 받기, 속이기, 사취하기, 사기, 협잡하기를 삼간다. 그는 상해 살인 포박 산적질 약탈 폭력을 삼간다.

그는 가사를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탁발 음식은 자신의 위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어디로 가든지, 그는 이것들만을 가지고 나선다. 마치 어디로 가든지 날개만을 짐으로 삼아 날아가는 새처럼, 비구도 또한 가사를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공양음식은 자신의 위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만족하고, 어디를 가든지 이것들만을 가지고 나선다. 이 성스러운 미덕의 무더기를 지니고, 그는 그의 내부에서­ 나무랄 데 없는 열­락을 경험한다.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그는 그 표상이나 특징을 움켜잡지 않는다. 만약 그가 안근을 무방비로 버려둔다면, 탐욕과 비탄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그를 침범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제의 방법을 실천하며, 안근을 방어하고, 안근의 자제를 수행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촉감 대상을 접촉하고 … 마음으로 마음의 대상을 인지하고, 그는 그 표상이나 특징을 움켜잡지 않는다. 만약 그가 심근을 무방비로 버려둔다면, 탐욕과 비탄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그를 침범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제의 방법을 실천하며, 심근을 방어하고, 심근의 자제를 수행한다. 이 성스러운 감관의 자제를 지니고, 그는 그의 내부에서­ 오염되지 않은 열­락을 경험한다.

그는 앞으로 가고 뒤돌아올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앞을 보고 멀리 볼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팔다리를 굽히고 펼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 가사를 입고 겉 가사와 발우를 들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 음식을 먹고 마시고 소비하고, 맛볼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 똥을 누고 오줌을 눌­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 걷고 서­있고 앉고 잠들고 깨어나고 말하고 침묵할 때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이 성스러운 미덕과 이 성스러운 감관의 자제의 무더기를 지니고, 또, 이 고귀한 알아차림과 완전한 앎을 지니고, 그는 외떨어진 무덤에 의지한다. 숲, 나무아래, 산, 협곡, 언덕아래 동굴, 시체 안치장 (charnel ground), 정글의 덤불 속, 노지, 풀 더미에 의지한다.

탁발에서­ 돌아오면, 식사 후에, 그는 가부좌를 하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자신의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앉는다.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그는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와 증오심을 버리고, 그는 악의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심의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악의와 증오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나태와 혼침을 버리고, 그는 나태와 혼침으로부터 자유롭고, 빛을 통찰하고, 알아차림과 완전한 앎으로 머문다. 그는 나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회한을 버리고, 그는 내적으로 평화­롭고, 동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들뜸과 회한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버림으로써, 그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서­, 건전한 상태들에 관해 당황함이 없이 머물고, 그는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이렇게 이 다섯 장애들, 지혜를 약화­시키는 마음의 결함을 버리고,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불선한 상태들로부터 떨어져서­, 그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 일으킨 생각과 지속되는 생각이 고요해짐에 따라, 그는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 기쁨도 또한 사라짐에 따라, 그는 세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 즐거움과 괴로움도 버리고, 그는 네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 네 번째 선정은 평정으로 인해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고, 알아차림의 청정함이 있다.

순환의 끝내기: 완전한 소멸

눈으로 형상을 보고, 그는 그것이 즐겁더라도 탐하지 않는다. 그것이 즐겁지 않더라도 그는 싫어하지 않는다.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머물면서­, 그는 그러한 악하고 불선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끝나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이렇게 좋아함과 싫어함을 버림으로써, 그는 어떤 느낌을 느끼든—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거나—그는 그 느낌을 기뻐하거나, 환영하거나, 그 느낌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느낌에 대한 기쁨이 그에게는 소멸한다. 그에게 기쁨의 소멸로써, 집착의 소멸이 오고, 집착의 소멸로써 유의 소멸, 유의 소멸로써 태어남의 소멸, 태어남의 소멸로써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소멸한다. 이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소멸이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맛보고 … 몸으로 촉감대상을 접하고 … 마음으로 마음의 대상을 인지하고, 그는 그것이 즐거운 것이라도 탐하지 않고, 그는 그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더라도 싫어하지 않는다 … 그에게 기쁨의 소멸로 집착의 소멸이 오고, 집착의 소멸로 유의 소멸, 유의 소멸로 태어남의 소멸, 태어남의 소멸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절망이 끝­다. 이러한 것이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소멸이다.

결론

비구들이여, 이러한 나의 설법을 갈애의 부숨에 의한 해탈이라고 간단히 기억하라. 그러나 어부의 아들, 비구 사띠는 갈애의 거대한 그물과, 갈애의 속박에 갇힌 것으로 기억하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에 만족하고 환희하였다.